


스페인, 중남미에서 이뤄진 Navaja 나이프 펜싱. 지금도 살아남아 전수되고 있다. 언뜻 스페인의 독특한 문화라고 생각되기 쉽지만, 사실 이 나바자 펜싱도 근대검술의 일부였다. 이 단체들도 홍보영상을 보면 근대시대의 호신술 체계를 전부 하고 있다. 즉 1.5m의 그레이트 스틱, 80cm정도의 지팡이 펜싱, 에뻬&세이버 펜싱, 다시 에뻬&세이버를 기반으로 창작한 19세기 자칭 중세검술, 19세기의 베어너클 복싱, 그리고 나이프 펜싱이다. 이 시스템은 풍격의 차이가 있다고 해도 극소수에 불과했고,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전 유럽에서 똑같이 이뤄졌다. 다만 나라에 따라 내세우는 대표 기예가 달라서 포르투갈은 1.5m의 그레이트 스틱술(조고 도 파우), 이탈리아와 프랑스는 지팡이 펜싱, 시칠리아나 스페인은 나이프 펜싱을 내세웠고 어느틈에 이게 그 나라 독자 무술인 것처럼 착각된 것이다.
시스템은 매우 간단해서 왼손에 모자, 자켓 등을 칭칭 감아서 보호하고 나이프로 상대를 찌르며, 왼손으로 쳐내고 체킹하고 붙잡는다. 이 과정에서 왼팔에 상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에 뭐든 감는 것. 선제공격보다는 상대방의 공격을 유도하고 받아치는 것이 중심이며, 이를 위해 몸을 낮추거나 칼을 치우는 등 다양한 미끼 모션들이 있다.
재미있는 건 이 나바자 폴딩 나이프는 날길이가 20cm에 달하거나 그 이상일 만큼 거대하다. 현재 콜드스틸 사에서 판매하는 XL Espada가 바로 이 나바자 폴더를 계승한 것이다.(에스파다는 스페인어로 "검"을 뜻한다)
사실 이런 크기와 무식하리만치 넓은 칼날 때문에 이러한 공방이 가능했다고 본다. 그룹내에서 나이프 파이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고무칼로 시도해봤을 때, 분명히 이런 방식의 나이프 펜싱도 가능하고, 방어가 있기는 했다. 그러나 짧고 장난감같은 폴딩 나이프로는 도저히 상대를 주저앉힐 만한 타격을 줄 수가 없다는 결론들이 나왔다. 이런 방식의 싸움에서는 공세가 실패하면 상대방이 금방 다시 찔러오는데, 나이프가 작아 워낙 속도가 빠르다보니 빠른 공방 속에서 뇌가 냉정을 유지하고 대응할 한계도 금방 찾아오고, 쉽게 찔리기도 쉽다. 기회는 공방 두세차례에서 딱 한두번만 나오는데, 그 순간 상대를 제압하려면 나이프가 이 나자바 폴딩 나이프 정도는 되어야 안심할 수 있다. 이정도는 아니더라도 날길이 17cm정도의 군용 대검 정도는 되어야 하고, 다시 상대방을 저지할 수 있는 곳은 단 하나, 얼굴뿐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실전이 오히려 격자부위가 제한된다는 검술의 보편 경향이 여기서도 드러나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 왼손으로 공방이 이뤄질 간격쯤 되면 아주 가까운 간격이 되는데, 그때 찌를 곳이라곤 얼굴 아님 쇄골 그쪽뿐이었다.
흔히 나이프 파이팅을 가지고 방어가 불가능한 쓸데없는 짓이라고 하며 입증하는 영상도 자주 올라왔는데, 세가지 이유가 있다고 본다.
첫번째는 제대로 찔러야 할 곳을 모른다. 나이프 상해사건을 보면 대부분 등, 배, 가슴, 팔 등 맞아도 안죽는 곳을 찌른다. 이정도면 군용 대검에 찔려도 몇방은 버틸 수도 있다. 그러다보니 한두번은 찔러도 쉽게 상대방의 근접을 허용한다.
두번째로 방어법을 모른다. 왼손으로 쳐내든, 양손으로 붙잡고 늘어져서 디스암하고 꺾어버리든간에 확실한 방어술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거 없이 쉽게 달라붙어서 열심히 옆구리와 등을 찔러댄다.
셋째, 제대로 된 큰 나이프가 아니라 10cm도 안되는 조그마한 폴딩나이프로 찌른다. 이 세가지가 합쳐져서 수십방 찔려도 멀쩡하게 뒹굴고 도망가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런 사례들을 가지고 나이프 방어나 펜싱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내가 스펀지칼로 싸워보니 둘다 상타만 수십방 나더라, 그러므로 검술이란건 다 개구라고 망상 사기꾼들이다" 라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초보운전자가 티코 타고 서킷 돌고는 슈마허, F-1다 꾸며낸 이야기라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확실한 것은 과거에 실제 사료로 유술계열의 나이프 호신술, 펜싱 계열의 나이프 결투술 모두 실존했고 사용했음을 보여주며, 최대한 도구와 상황을 재현해서 싸워보면 분명히 방어의 예술이 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나바자 나이프 펜싱을 비롯 근대 나이프 펜싱을 전수하고 있는 단체들도 보면 좀 더 들어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더 먼 거리에서 손을 베거나 배를 치는 경우가 많이 보이는데 마스크나 방어구 없이 연습하다보니 상대가 다칠 것을 우려해 랜덤 드릴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기 시작한 것으로 보여진다. 우리 그룹도 겪었던 문제였고 장갑, 마스크, 자켓을 도입해서 다칠 염려 없이 과감하게 들어서면 옛 조상의 방어의 예술을 완벽하게 되살려 낼 수 있을 거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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