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주나라에서 서융족에 의해 처음으로 청동검이 들어온 이래로, 검은 점점 길어져 초나라에서는 날길이 1m, 손잡이 40cm에 달하는 쌍수검을 만들어내었고 장협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각국에 유행했습니다. 진시황도 형가의 암살사건 당시 녹로라는 이름의 장검을 차고 있었고 너무 길어 뽑지 못하다가 등에 지고 뽑아 형가를 베어 살아남은 일화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후 쌍수검은 한나라 때까지 크게 유행했습니다.
세월이 지나 명나라 시대가 되어 쌍수검술은 사라진 것처럼 보였지만, 두가지 쌍수검술이 불완전하게나마 존재했습니다. 하나는 군사종합서적 무비지를 편찬한 모원의가 조선에서 입수한 쌍수검보인 조선세법이었고, 또 하나는 명나라의 유대유 장군이 민간무술가 이량흠에게 배운 형초장검입니다.
유대유는 형초장검을 배워 이를 봉술로 바꾸었고 이를 검경으로 정리, 자신의 군대에 교습시켰으며 척계광 군대에도 당파, 대봉술로 교습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쌍수장검술로써의 모습은 사라졌지만, 다른 봉술과는 달리 양손 사이의 봉으로 막지 않고 반드시 오른손 앞으로 막는 것 등의 여러 모습에서 검술의 흔적을 보았고, 이런 점을 통해 충분히 쌍수검술로의 재복원이 가능하다고 판단하여 작업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검경 자체가 체계적으로 개념과 기술이 정리된 것이 아니라 유대유 개인이 생각나는 대로 써놓은 것이기 때문에 그대로 영상화시키면 너무 혼란스러워지고 분량이 지나치게 많아지는 문제가 있어 전체 내용을 다시 재정리하고 원리를 다시 배열하는 작업이 필요했고, 그 탓에 어느정도 정리를 하면서도 영상이 길어지는 것을 피하기 어려웠습니다.
개인적으로 느낀 형초장검의 특징은, 절제되고 짧은 동작 위주로 움직이고 방어할 것을 강조하고 그 안에서 허리, 뒷손, 앞손으로 이어지는 힘의 전달을 통해 작은 동작에서 강한 위력을 내는 것을 통해 우위를 추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보여지는 풍격이 마치 검도와 유사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같은 명대의 조선세법(https://youtu.be/DvosLNP5TGI)과 비교하면, 조선세법은 훨씬 크고 호쾌한 동작으로 큰 베기 위주의 공세를 가하며 보법에서도 중국무술 특유의 요보, 진보 등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풍격이 많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0:27 형초장검의 공격부위
1:10 대문(大門)으로 들어오는 공격의 방어
1:19 당(當) / 2:00 개(磕)/ 2:21 압(壓)/ 2:40 세(洗)/ 2:55 체(剃)/ 3:20 전(剪)/ 3:47 게(揭)/ 4:05 봉(捧)/ 4:32 란(欄)/ 5:03 좌우래구(左右來具)
5:42 소문(小門)으로 들어오는 공격의 방어
5:53 곤(滾)/ 6:25 하접세/적수세(下接勢/滴水勢)/ 6:50 하기천수상/하천세(下起穿手上/下穿勢)/ 7:09 적수헌화(滴水獻花)
7:37 검경의 기술을 통해 보는 형초장검의 교전
7:39 반산탁(盤山托)/ 8:13 철우입석(鐵牛入石)/ 8:48 철문연(鐵門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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