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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아부 사이프의 전투의 예술(Kunst des Fech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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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습대 14화 출장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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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본영이란 말 그대로 군 본부가 이런저런 이유로 전장에 야전본부를 설치하는 것을 말하는데, 사실 이게 말이 되려면 본부건물은 따로 있어야 하겠지만 대원은 급격히 늘었어도 관리는 체계적이지도 못했고 업무는 집에서 처리했으며 업무량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무실 같은 건 있지도 않았으니, 말이 출장본영이지 실제론 그냥 본영이라 하겠다.

출장본영이 생긴 것은 원곡동 습격사건 이후 이틀이 지나서였다. 원곡고등학교 교장으로부터 어찌 알았는지 전화가 온 것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만나서 하기로 했는데, 역시 후배인 전습대 보병지도역상당(步兵差圖役相当) 이상평도 함께 동행했다. 모 다방에서의 대화는 다음과 같았다.

"그런 거라면 바로 우리 아니면 누구도 못할 일입니다. 학생들에게 군병법을 가르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희망이었습니다."

병법이란 우리나라에선 군사 전략을 의미하지만 일본에서는 병사의 법, 즉 무술과 기타 등등 상식 전반을 의미한다. 교장은 의외로 호의적인 대답이 나오자 조금 안도한 듯 커피를 홀짝이더니 뒤이어 말한다. 손가락을 꼬고 꼼지락거리면서.

"그... 그뿐만 아니라 전습대 여러분들께서 저희 학교를... 정리를 좀 해 주시는 것도 좀 부탁을 드릴까 하는데..."
"정리라 하신다면?"

"아시다시피 우리 원곡고는 한국인 학생이 그래도 많기는 합니다만, 거의 절반 가까이가 외국인, 거의 중국인이나 조선족들인데 이 애들이 얼마나 사나운지 정말 우리 선생들만으로는 어떻게 계도를 할 수가 없습니다. 작년에는 우리 체육선생이 애들을 좀 선도를 하려고 했더니 글쎄 밤중에 집단으로 칼에 맞았지 뭡니까. 그래서 선생들도 몸을 사리는 형편입니다. 그러니 한국애들도 불량 써클을 만들어서 패싸움을 벌리고 죄다 칼을 차고 다니는데... 참으로 교육자로써 부끄러운 말씀입니다만 저희가 학생들을 어떻게 할 방도가 없습니다...."

"요컨데 학내 경찰 역할을 해달라.."

"어려운 부탁인 줄은 압니다만 제발 좀...."

"그런거라면 진작에 말씀하셨어야죠. 그런 것도 우리가 전문가입니다."

"오오! 정말 감사드립니다!!"

60넘은 원로 교육자가 이제 서른인 사람에게 책상에 고개를 박을 듯 숙이는 것도 거시기했지만, 그만큼 반갑지 않을 수 없다는 뜻이다. 사실 이 교장이 살아 온 생애 대부분이 장유유서가 엄격했고 지키지 않으면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는 유교 사회였지만, 지금은 늙고 약해진 몸을 다잡으며 젋은 패기에 맞아죽을 공포를 안고 움츠리는 삷을 강요당한 입장이다. 그 자체가 얼마나 괴롭고 비참했을지. 그러나 우리 시대착오 스페셜인 근대 유럽의 사상으로 중무장한 전습대가 있다면 그는 다시 젋었을 때 올려다보던 <어른>의 입장에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조건을 제시해볼까?

"그러고보니 참으로 학생 수가 많이 줄지 않았습니까?"

"예... 좀비사태 이후로 사람도 참 많이 죽었지요.. 젋었을 적만 하더라도 수도권 과포하라고 말도 많았는데, 어찌 이리 되었는지.."

"빈 교실도 많겠군요?"

"예.. 좀 됩니다."

"효율적인 지도와 업무를 위해 교실을 좀 빌려주셔야 겠습니다."

"얼마든지요! 하하하..."

그리하여 출장본영이 생긴 것이다. 출장본영은 교실 4개를 전용했고, 하나는 출장본영 즉 사무실, 두개는 내무반, 나머지 하나는 교보재 창고이다. 내무반을 설치한 것은 이런 이유이다. 원래 전습대라는 것이 매일 집에서 나와 모여 훈련하는 것이 일과로, 딱히 숙영을 하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들 가정이 있는 사람들이고 사실 딱히 숙영씩이나 할 이유가 없었다. 사실상 무장한 자율방범대 이상은 아니었으므로. 하지만 학내 치안을 맡은 이상 출퇴근 방식으로는 더이상 상시 치안을 확보할 수 없었다. 학교라도 야밤에 숨어서 공포분위기를 조성할 수도 있고 시설물 테러를 벌일 수도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무엇보다 전습대원들이 무장하고 순찰을 하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예비 범죄자에게는 계획을 단념시키고 선량한 일반인에게는 믿음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고로, 1소대 뇌격대, 2소대 뇌전대가 각각 일주일 간격으로 로테이션을 돌며 출장본영에서 숙식하는 것으로 결정을 보았다. 대원들은 처음에는 약간 불만을 가진 듯 보였지만, 출장본영 파견군으로 근무하면 시 교육청에서 학내면학분위기진흥예산 명목으로 편성된 금액을 통해 한달 최대 60만원의 추가 보너스를 받을 수 있다는 것에 대단히 환호했다. 다시 말하지만 이 다크한 세상에선 한국인들이 취직하기 매우 어렵기 때문에 세후 200만원 정도면 부러움을 받을만한 소득이다.

이쯤 되면 신시가지의 자율방범대 활동이 어려워지지 않을까 싶기도 할텐데, 결국 안산시경에서는 신시가지에서 더이상 자율방범대가 필요없다고 공문을 보내 왔다. 어차피 1개 소대를 전용해야 하는 입장이므로 그러는 편이 우리에게는 더 나았으니 때맞춰 잘 된 셈이다.

출장본영 설치에 앞서 전습대원들에게는 대대적인 추가 교육이 실시되었다. 추가 교육이라고는 해도 기존에 쓰던 군병법의 과목에서 단지 비중만 늘린 것이다. 가장 큰 것이 바로 두가지인데 첫번째는 거합발도술의 교육의 비중을 늘린 것이다. 이것은 학교 치안에서 특히 더 중요했는데 이미 반쯤 갱단화되고 부엌칼 무장이 일상화된 학내 써클들이 낮에는 혼내면 예 예 하고 물러나겠지만, 밤중에 타겟을 잡아 습격하여 난도질해 죽일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체육선생이 작살이 난 경력도 있겠다, 밤중에 가해질 습격에서 확실히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거합 발도술의 집중 훈련이 아주 중요했다.

거합 발도술은 당연히 제정거합이나 고류의 것을 액면 그대로 베끼지는 않았다. 앉아서 시작하는 기술은 어디까지나 과거 일본의 생활방식일 때에나 합리성을 가지지 현대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 그러므로 서서 하는 기술, 즉 입식(立式)을 중심으로 했는데, 이미 대원들이라면 지겨울 만큼 해본 육군 토야마학교 발도술 7본에 더해 제정거합의 입식 기술을 더했다.

여기에 보통 거합이라면 혼자서 정해진 순서대로 하기 마련이지만 이걸 상대역을 두고 일부러 각본과는 다르게 움직여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창의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지팡이를 이용한 전투술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19세기 말에 잠깐 유행했던 지팡이를 이용한 신사들의 호신술을 부활시킨 것인데, 굳이 지팡이여야 하는 이유는 일단 출장본영의 학생지도에 임하는 대원에게 있어서 학생은 적이 아니라 계도해야 하는 제자의 입장이다. 그러니 칼을 들이대고 그래서는 교육자로써의 입장이 서지 않는 것이다. 사실 상식적으로 애들에게 칼부터 들이댄다는게 말이나 되나. 애들이 칼을 들이대는 건 상관없지만 웃사람은 기품과 행동 모든 면에서 차별화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므로 지팡이를 이용해 권위를 보이고 호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즉 발도술이 야간의 술이라면 지팡이술은 주간의 술이다.

지팡이술이라고는 했지만 굳이 대단한 것은 아니고, 당시 유럽에서 세이버 검술의 원리를 그대로 가져다가 그냥 손에 쥐는 것만 세이버에서 지팡이로 바꾼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미 세이버 검술의 원리까지 군도 한손사용법이라는 과목으로 익힌 대원들에게는 별로 어려울 것이 없었다. 다만 몇가지 포인트가 다를 뿐인데, 검과 달리 지팡이는 타격무기이므로 손으로 단단히 쥐게 되며 항상 어깨를 이용해 크게 휘둘러야만 한다. 그리고 상대가 붙잡을 수도 있고 빠르게 근접해올 수도 있으니 양손으로 지팡이를 쥐어 근거리에서도 대비할 수 있게 하는 타격법을 포함했다. 중세 검술에서 하프 소딩이라고 하는 기법과 비슷하지만 근대에서도 독자적으로 고안되었던 기법이다.

이 두가지 기법이 출장본영의 주요 업무인 학내 치안에서 중심이 되는 부분이다. 물론 이와 더불어 대원들에 대한 사상투쟁도 한층 강화되었다. 19세기 유럽 사회의 경향과 목적, 현대 사회 구조의 기원 등등 따지고 들자면 이것 저것 복잡하지만 가장 핵심이 되는 키워드는 "전습대원들은 한명 한명이 젠트리, 장교는 귀족이며 근대화의 기수" 이고 "무책임한 정계가 놓아버린 사회 계도의 고삐를 붙잡아 올바른 근대 사회의 바른 길로 국민들을 이끄는 것" 이야말로 사명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출장본영이 바로 근대화의 최선봉진지가 되는 것이다.

일주일 내내 인테리어 공사와 집기 입주가 끝나고 주말에 정식으로 입주한 출장본영. 주말이었지만 선생들이 죄다 나와서 자비로 회식 비용을 내주고 간곡한 부탁이 이어졌다. 매주 월요일마다 조회가 있는데, 애들이 어차피 말을 안 들으므로 대부분 방송조회로 대체했고 그때마다 애들이 조회를 듣기는 커녕 혼돈의 카오스가 가속되어 선생이 도저히 통제를 못한다는 것이다. 당장 월요일이 내일이니 꼭 좀 애들을 교화해달라는 부탁이다. 나는 한가지 조건을 내세웠는데 바로 내일, 월요일 조회는 반드시 운동장 조회여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그건 좀.. 애들이 너무 말을 안 듣습니다. 여기에 외국인 애들은 일부러 못알아듣는척 하면서 요지부동이에요. 저희도 어떻게 통제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냥 방송조회로 하면 안 되겠습니까?"

"그건 절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운동장으로 내보내세요. 다음은 저희가 다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 벌어져도 절대 외부에 개입을 요청하지 마시길. 이것이 안 지켜진다면 우리는 절대 출장본영에서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외부라면..."

"경찰이나 교육청 같은 거 말입니다. 뭐 경찰이 구시가지에 나타나기야 하겠습니까마는..."

월요일 조회 시간이 되자 참 2층의 출장본영 창문 너머로 보이는 운동장의 상황은 혼돈의 카오스 그 자체였다. 학생들은 교복 마이를 반쯤 벗어서 걸치고 있던가 줄은 심각하게 흐트러져 있고 씨발 씨발의 욕설이 간간히 들려오고 있었다. 아.. 진짜 내가 맡았지만 정말 눈앞이 깜깜했다.

"에.. 다음은 새로 오신 선생님을 소개하겠습니다..."

교장의 소개가 채 끝나기도 전에 단상 앞으로 나와 마이크를 들고 우뚝 선 내 모습을 보자 점점 시끄럽던 말소리들이 잦아들었다. 그와 동시에 자기들끼리 떠들던 앞줄의 학생들은 어느 틈에 자기들 앞에 일정 간격으로 군도를 차고 지팡이를 짚고 선 자들의 모습을 보고는 즉시 긴장했다. 그도 그럴 것이 소문으로 들어, 또 어떤 자는 익히 보아 알고 있을 것이다. 한국 정부에서 뒤를 봐 준다는 소문이 있는, 가차없이 칼을 뽑아 사람을 베어버린다는 전설의 괴신사집단, 그 상징인 다크 블루의 울100%원단에 황금 단추의 제복을 착용한 바로 그들을..! 더군다나 얼마 전에는 떼거지로 무려 소총에 착검까지 해가지고서는 나타났다 사라지지 않았던가?

그런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무력의 주인공들이 이렇게 나타났으니 나약한 어른들에게 이빨이나 들이대며 설치던 애들이 감히 대들 수 없을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원래 무서운 게 없는 10대들,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바로 약점을 보고서는 이빨을 드러낼 것이다. 하지만 우리 전습대에는 약점이 존재하지 않지...

학생대중들을 좌우로 한번 쓱 둘러본 다음 입을 떼어 한마디 던져준다.

"제군들! 학교에 다니는 이유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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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판타지 3부 신세기 괴신사집단 전습대 15화 근대화의 기수
언젠가 씁니다.

* 거합 - 일본에서 전해지는 기술체계로, 하야시자키 진스케 시게노부를 시조로 하며 주로 평상시 상대의 기습에 대비, 혹은 상대를 기습하는 등의 경우를 상정한 체계입니다. 에도시대에 특히 유행했고 그렇기 때문에 당시의 생활방식에 맞추어 정좌한 상황에서 상대를 베고 살아남거나 혹은 길을 가다가, 매복하는 상황 등을 상정해서 훈련합니다. 어지간한 유파에서는 대부분 거합 체계를 포함하고 있죠. 아마 후대에 만들어져 포함된 경우가 많다고 보여집니다.

제정거합은 이 여러 유파의 거합을 통합 정리하면서 하나의 공식화된 국가무도로써 제정한 것으로, 원래 10본까지 있었으나 2005년 새롭게 11, 12본을 추가했습니다. 토야마학교 발도술도 구 일본육군의 백병전연구를 맡던 육군토야마학교에서 야전에서의 장교의 호신을 위해 발도술을 제정한 것으로 특징은 전부 입식이라는 점입니다.


(제정거합 12본 시연)

* 지팡이술 - 19세기 후반~1차대전 이전까지 유행한 호신술 시스템으로 당시 신사들의 정장이 완성되려면 지팡이와 모자가 필수였는데 그 지팡이를 이용해 강도나 시비로부터 호신을 해보자는 구상으로 등장한 호신술입니다. 세이버 검술에서 지팡이술의 기본 체계를 이식받았고 일본의 천신진양류 유술이나 나이프 격투술 등을 포함하는 종합 호신체계였습니다. 19세기만 해도 어두침침한 가스등과 안개 탓으로 범죄율이 높아 이 호신술이 인기가 있었지만 1차대전 이후로는 정장에서 지팡이가 제외되면서 의미를 잃어버렸습니다. 현재도 명맥이 이어지는데 완전히 스포츠화된 프랑스의 깐느 드 꼼밧, 전통적 호신술 시절의 모습을 간직한 이탈리아의 노바스크리마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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