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시가지의 최전선에 해당하는 원곡동&초지동 지역에서의 간판들만 보면 완전히 중국 상권으로 넘어간 것 같지만, 그 사이사이에는 아직까지 살아남아서 영업하는 한국인 상점들이 생각보다 다수 존재했다. 원래 안산시의 모체가 된 지역인 만큼 그 중에는 30년 넘게 장사한 사람도 가끔 있는데, 이런 사람들은 평생을 그것만 하고 살다 보니 이제 와서 좀 어렵다 한들 다른 일을 한다는 것은 생각도 못하는 그런 사람들이다. 그래서 술주정뱅이들의 고차원 발악에 깨진 접시를 주워담으면서도 그냥 넘어가고, 가끔 조직원을 자처하는 자가 공짜 밥을 먹고 사라져도 굽신거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그런데 전습대의 출장본영 설치 이후 그런 힘의 역학관계에도 조금씩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일단 원곡고 주변부의 치안이 확고히 좋아지면서 더이상 최소한 주변부 상인들의 고충은 한층 덜하게 된 것이다. 특히 친다오밍 패거리가 분식집에서 무전취식하는 것은 사실상 막을 수도 없었고 각양각색의 개조 교복들이 난무하는 와중에서 나이먹은 상인들은 젋은 패기에 맞아죽을 걱정을 하고 있을 뿐이었는데 어느날부터 그런 게 갑자기 확 사라진 것이다. 비록 그 내면에는 사람들이 모르는 산제물이 좀 있긴 했지만, 당장 상인이나 주변부 주민들 입장에서는 그런 걸 알아도 신경쓸 이유가 없었다. 당장 내가 안전하면 장땡이지...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다.
"아줌마! 내가 여기 산동 천웅방에 친구의 친척의 아는 사람이 있어! 한번 몸보신 거리 되보고 싶어?"
저녁때 보병지도역 요컨데 내가 친히 주변부를 돌던 도중 작은 술집에서 행패를 부리는 사람이 있었다. 급히 들어가 이야기를 들어본즉 아줌마가 그냥 나가려는 걸 붙잡고 계산을 안하냐고 하니 갑자기 신발을 던지며 발광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원곡동과 초지동 일부를 통제하는 천웅방의 이름을 대면서 공갈을 치는 것이었는데....
말하는 투를 보면(친구의 친척의 뭐?) 천웅방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게 틀림없었다. 그냥 으례 이친구들이 그렇듯 유명한 조직 이름 주워섬기며 허세를 부리는 것일 뿐이다. 즉시 칼집을 잡고 엄지손가락으로 쯔바를 밀어 칼집에서 약간 빼면서 얼굴에는 웃음을 띄우고 한마디 해준다.
"그런가, 내가 여기 전습대의 봉행 겸 보병지도역인 에노모토 카마지로라는 것은 알고 하는 말인가?"
칼을 뽑으려 드는 데에다 전습대의 이름이 나오니 거나하게 취한 눈이 이제야 정신을 차리는 듯 하다. 곧 다크 블루 원단의 100%울 재질 차이나칼라 의복과 광낸 황동 단추가 빛나는 소문의 제복을 확인하고는 크게 놀라더니 고개를 숙이고는 옆을 지나 조용히 사라진다. 물론 던진 신발을 도로 줏어왔을 턱이 없으니 양말 바닥으로 도망가는 것이다.
참고로 에노모토 카마지로라는 이름은 근래 자처하기 시작한 이름이다. 왜냐하면 이제 이곳으로 들어온 이상 집단vs잔챙이의 구도가 아니라 조직vs조직의 구도를 띠기 시작했기 때문에 나를 비롯 대원들의 신변의 안전을 위해서는 가명을 쓰는 게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대원들도 제각기 가짜 이름을 만드느라 분주했다. 그러나 사내놈이 오드리 햅번이라는 이름을 쓰는 것은 퇴짜를 놓지 않을 수 없었다.
주인집 아주머니가 연신 허리를 굽히며 감사를 표한다. 그런 아주머니의 손에 오늘 손해를 봤을 테니 받아두시라며 오만원짜리 한장을 내미는데 황송해하며 연신 사양하는 아주머니의 앞치마에 억지로 집어넣으며 위로의 말을 건넨다.
"그런데 저런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은가 보지요?"
"아유 말도 마세요. 내 여기서 20년을 장사했지만 진짜 옛날에는 사람들이 다 좋았는데 이제는 다 저런 말종들 뿐이에요."
참고로 구시가지 사람들은 지난 좀비사태에서 생각외로 많이 살아남았는데, 열차역이 코앞이라 의외로 대피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이 아줌마도 그런 사람 중 한명인 모양이다.
"이거 경찰은 오지도 않나요?"
"경찰이 사람이 없다고 거의 한두시간 지나서야 도착하고 그러니까.. 그리고 작은 일 가지곤 오지도 않아요. 저기 원곡파출소 있잖아요. 작년에 불태워지고 경찰 몇명 죽은 다음에는 아예 다시 열 생각도 안해요."
인력이라도 많으면 밀어붙이기라도 하지, 몰락한 도시에 돈 쏟아부을 정부는 없는 법이다.
"누가 이거 치안을 지킬 팀이 있기라도 해야지..."
"그러게나 말이에요. 천웅방인지 만웅방인지는 상인들에게 자릿세는 뜯어가면서 하나 해주는 게 없으니, 천웅방 자처하고 공짜밥 먹고 사라지는 놈들만 더 늘어난 거 같애. 아유..."
"요즘 천웅방들이 오긴 오나요?"
"어...그러고보니 자릿세 걷어갈 날이.. 사흘 전이었는데 안 오네?"
아무래도 전습대와 충돌하기보다는 일단 물러서는 쪽을 택한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전습대는 국가의 뒷배경을 업고 있다는 소문이 자자한데다 총기 무장까지 했다는 것을 소문이 아닌 눈으로 다들 직접 보았기 때문에 함부로 덤빌 재간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아무래도 원곡고 주변은 전습대의 나와바리로 인식하고 일단 물러선 듯 했다.
"그래도 영 험하니 전담 팀이 있긴 해야 할텐데, 보안업체 같은 데는 안 찾아보셨어요?"
"아유 말도 말아요. 이쪽에서 일하겠다는 팀도 없거니와 한달 20만원씩이나 부르던데..."
"천웅방은 자릿세를 얼마나 걷어가나요?"
"글쎄... 장사하는 데마다 틀려요. 우리네는 한달에 15만원씩 걷어가는데... 저기 저 큰 마트는 한달에 백만원인가 걷어 간다고 하던데.."
과거 보안업체의 가정집 서비스는 가스나 도둑 침입에 대한 비상경보 및 출동 서비스로 약 오만원 전후로 서비스를 제공했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대기하다가 일이 생기면 출동하는 것이지 항시 그 지역을 순시하며 치안을 유지하는 방식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대원이 출동할 때마다 추가 비용을 낸다지 않는가. 우리 전습대가 자릿세 대신 치안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천웅방을 비롯한 조직으로 흘러들어가는 돈을 우리가 먹을 수 있음은 물론, 우리의 나와바리도 확대되고 그 재력을 바탕으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곧 우리 전습대가 지역 치안 서비스를 개시할 겁니다. 월 일정액만 내면 천웅방 같은 놈들은 얼씬도 못하고 취객 행패 같은 건 옛날의 추억 거리도 안 될걸요."
"아유 그래? 나야 천웅방 놈들 꼴도 보기 싫은데 잘됐지. 그래서 얼마유?"
"그건 나중에 고지하겠습니다. 아무튼 수고하십쇼."
그리하여 급격히 일이 진행되게 된 것이다.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것은 순찰 및 비상출동 서비스로, 스마트폰 앱과 전화선을 이용한 비상벨을 통한 출동이 이루어진다. 가격은 월 15만원이 기본으로, 구멍가게에서 천웅방이 걷어가는 비용과 똑같다. 여기에 비상 출동 서비스가 여러번이라도 추가 비용이 들지는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계약 관계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에, 천웅방 같은 곳처럼 자릿세만 받아 챙기고 정작 일이 벌어지면 나 몰라라 하지도 않거니와 항의하면 눈 부릅뜨고 협박하는 짓도 안한다. 그리고 보복에 대한 문제도 확실하게 보호해준다.
단, 정식으로 보안 업체로 등록해서 합법적인 형태를 가지지 않으면 나중에 조직의 자릿세 걷어가기와 별 차이 없을 터이니, 정식으로 사업자등록증을 받아 등록했다. 이에 대해서는 내부의 반대도 많았다. 가령 보병지도역상당 이상평 같은 경우는...
"형님... 사업체가 되면 세금도 내야 하고 나중에 꼬투리 잡혀도 잡히는 거 아닙니까? 그냥 다른 데처럼 조용히 자릿세로 하시는 게.."
"그게 지금 우리 위치라는게 애매모호하다는 걸 생각해야 돼. 지금 법과 불법의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타고 있는데 이제 우리는 조직 스타일의 이권사업에 손을 뻗치기 시작할 건데 사실 우리들은 쟤네들이 잡자면 얼마든지 잡을 수도 있다고. 그러니 가능한 한 합법적인 형태를 띠는 게 우리에게는 좋아. 불법 조직은 무차별로 때려잡으면 그만이지만 합법조직은 나름 법의 보호를 받는다고."
사실 일본만 하더라도 야쿠자들이 합법적 회사 형태로 전환한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우리나 야쿠자나 국가권력의 방임 속에서 살 수 있는 것이지 마음먹고 때려잡으려 하면 한큐도 안 걸린다고 보면 된다. 이것을 모르고 오만에 빠진다면 인생 한방에 훅간다는 것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조폭이 검사에게 인상만 써도 검사가 빌빌댄다는 망상은 초딩 시절로 족한 것 아니겠는가? 법은 구속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보호의 양면성을 가진다는 점은 잊어서는 안되는 법이다.
회사명은 전습대 S&P 서비스. 대원들은 모조리 직원으로 등록되었다.
공식적으로 업무를 개시하기 전부터 이미 원곡고 주변의 한국인 가게들은 미리 가입해 있었다. 홍보를 할 때 외국 국적의 사업체라도 차별없이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을 특별히 강조해 놓았지만 중국 및 외국계 가게들의 가입율은 매우 적었는데, 아무래도 외국인들은 자기들끼리 강한 친목으로 결합되어 있었던 탓에 아무래도 어려운 점이 있었다고 봐야 할 수밖에...
하지만 첫달의 수입액은 1600만원 좀 안되는 정도로, 생각 외로 수익률이 좋았다. 아무래도 원곡동 초지동 방면에 외국인들, 그중에서도 중국인들 투성이였지만 의외로 다세대/다가구 주택의 주인은 여전히 대부분 한국인들이었고, 그들이 앞다투어 전습대 시큐리티 & 프로텍션 서비스에 가입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급작스럽게 인력 부족이 표면화되었고, 국방무도협회.... 아니 전습대 내무교도단에서 특별히 선발한 1개 소대, 뇌신대(雷神隊)가 추가로 편제되었다. 나머지 소대도 모두 정수인 40명을 채웠고, 이로써 3개 소대가 구성되어 전습대는 1개 중대 규모로 확대되었다. 이 편제는 구 막부전습대가 채용한 1860년 당시 프랑스식 편제이다.
그리고 교실 하나가 더 징발되어 원곡고 출장본영 주둔병력은 2개 소대로 확대되었다.
그리고 평화로운 출장본영의 맑은 하루,
"이번달 회계 보고에요."
"으잉?"
김추자가 내민 서류철에는 전습대 관련 예산의 현황과 지출 내역이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요시노부가 내주고 간 예산도 공개되어 있었다. 무려 약 2억엔이라는 거금이다.
"요시노부 공이 자기가 지원한 예산은 다 김추자씨에게 일임하고 비밀 운용하는 거 아니었나?"
"훗... 사실 봉행씨가 한철 떴다 지는 껄렁패인지 그래서 예산이나 축내다가 사라질 사람인지 아닌지는 몰랐거든요. 그래서 혹시 몰라서 요시노부 공이 그랬던 거죠. 하지만 이제는 당신을 좀 알 거 같다고 하시네요."
"흐흐흐... 나의 능력을 한번 본 이상 의심쟁이로는 있을 수 없게 된 것이었지!"
"또 이러네, 아무튼 그것도 그렇지만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네요."
"이름?"
"에노모토 카마지로!"
이 이름, 도쿠가와 요시노부라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없긴 할 것이다.
"면접에는 합격했다는 훈령이 내려왔죠. 2억엔의 예산은 한번 자유롭게 써 보라고 하시네요."
김추자가 숨을 들이쉬더니 다시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그 분은 사람을 쉽게 믿지는 않지만, 한번 믿으면 끝까지 믿으시죠. 잘해봐요."
김추자가 돌아서다 뭔가 생각난 듯이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몇번 건드리다 말했다.
"그런데 전습대는 오오토리 케이스케 아니에요?"
"난 그놈 싫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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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판타지 3부 신세기 괴신사집단 전습대 18화 전습대 금융, 시작했습니다!
언젠가 씁니다.
tag : 팬픽, 다크판타지, 전습대
그런데 전습대의 출장본영 설치 이후 그런 힘의 역학관계에도 조금씩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일단 원곡고 주변부의 치안이 확고히 좋아지면서 더이상 최소한 주변부 상인들의 고충은 한층 덜하게 된 것이다. 특히 친다오밍 패거리가 분식집에서 무전취식하는 것은 사실상 막을 수도 없었고 각양각색의 개조 교복들이 난무하는 와중에서 나이먹은 상인들은 젋은 패기에 맞아죽을 걱정을 하고 있을 뿐이었는데 어느날부터 그런 게 갑자기 확 사라진 것이다. 비록 그 내면에는 사람들이 모르는 산제물이 좀 있긴 했지만, 당장 상인이나 주변부 주민들 입장에서는 그런 걸 알아도 신경쓸 이유가 없었다. 당장 내가 안전하면 장땡이지...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다.
"아줌마! 내가 여기 산동 천웅방에 친구의 친척의 아는 사람이 있어! 한번 몸보신 거리 되보고 싶어?"
저녁때 보병지도역 요컨데 내가 친히 주변부를 돌던 도중 작은 술집에서 행패를 부리는 사람이 있었다. 급히 들어가 이야기를 들어본즉 아줌마가 그냥 나가려는 걸 붙잡고 계산을 안하냐고 하니 갑자기 신발을 던지며 발광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원곡동과 초지동 일부를 통제하는 천웅방의 이름을 대면서 공갈을 치는 것이었는데....
말하는 투를 보면(친구의 친척의 뭐?) 천웅방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게 틀림없었다. 그냥 으례 이친구들이 그렇듯 유명한 조직 이름 주워섬기며 허세를 부리는 것일 뿐이다. 즉시 칼집을 잡고 엄지손가락으로 쯔바를 밀어 칼집에서 약간 빼면서 얼굴에는 웃음을 띄우고 한마디 해준다.
"그런가, 내가 여기 전습대의 봉행 겸 보병지도역인 에노모토 카마지로라는 것은 알고 하는 말인가?"
칼을 뽑으려 드는 데에다 전습대의 이름이 나오니 거나하게 취한 눈이 이제야 정신을 차리는 듯 하다. 곧 다크 블루 원단의 100%울 재질 차이나칼라 의복과 광낸 황동 단추가 빛나는 소문의 제복을 확인하고는 크게 놀라더니 고개를 숙이고는 옆을 지나 조용히 사라진다. 물론 던진 신발을 도로 줏어왔을 턱이 없으니 양말 바닥으로 도망가는 것이다.
참고로 에노모토 카마지로라는 이름은 근래 자처하기 시작한 이름이다. 왜냐하면 이제 이곳으로 들어온 이상 집단vs잔챙이의 구도가 아니라 조직vs조직의 구도를 띠기 시작했기 때문에 나를 비롯 대원들의 신변의 안전을 위해서는 가명을 쓰는 게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대원들도 제각기 가짜 이름을 만드느라 분주했다. 그러나 사내놈이 오드리 햅번이라는 이름을 쓰는 것은 퇴짜를 놓지 않을 수 없었다.
주인집 아주머니가 연신 허리를 굽히며 감사를 표한다. 그런 아주머니의 손에 오늘 손해를 봤을 테니 받아두시라며 오만원짜리 한장을 내미는데 황송해하며 연신 사양하는 아주머니의 앞치마에 억지로 집어넣으며 위로의 말을 건넨다.
"그런데 저런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은가 보지요?"
"아유 말도 마세요. 내 여기서 20년을 장사했지만 진짜 옛날에는 사람들이 다 좋았는데 이제는 다 저런 말종들 뿐이에요."
참고로 구시가지 사람들은 지난 좀비사태에서 생각외로 많이 살아남았는데, 열차역이 코앞이라 의외로 대피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이 아줌마도 그런 사람 중 한명인 모양이다.
"이거 경찰은 오지도 않나요?"
"경찰이 사람이 없다고 거의 한두시간 지나서야 도착하고 그러니까.. 그리고 작은 일 가지곤 오지도 않아요. 저기 원곡파출소 있잖아요. 작년에 불태워지고 경찰 몇명 죽은 다음에는 아예 다시 열 생각도 안해요."
인력이라도 많으면 밀어붙이기라도 하지, 몰락한 도시에 돈 쏟아부을 정부는 없는 법이다.
"누가 이거 치안을 지킬 팀이 있기라도 해야지..."
"그러게나 말이에요. 천웅방인지 만웅방인지는 상인들에게 자릿세는 뜯어가면서 하나 해주는 게 없으니, 천웅방 자처하고 공짜밥 먹고 사라지는 놈들만 더 늘어난 거 같애. 아유..."
"요즘 천웅방들이 오긴 오나요?"
"어...그러고보니 자릿세 걷어갈 날이.. 사흘 전이었는데 안 오네?"
아무래도 전습대와 충돌하기보다는 일단 물러서는 쪽을 택한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전습대는 국가의 뒷배경을 업고 있다는 소문이 자자한데다 총기 무장까지 했다는 것을 소문이 아닌 눈으로 다들 직접 보았기 때문에 함부로 덤빌 재간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아무래도 원곡고 주변은 전습대의 나와바리로 인식하고 일단 물러선 듯 했다.
"그래도 영 험하니 전담 팀이 있긴 해야 할텐데, 보안업체 같은 데는 안 찾아보셨어요?"
"아유 말도 말아요. 이쪽에서 일하겠다는 팀도 없거니와 한달 20만원씩이나 부르던데..."
"천웅방은 자릿세를 얼마나 걷어가나요?"
"글쎄... 장사하는 데마다 틀려요. 우리네는 한달에 15만원씩 걷어가는데... 저기 저 큰 마트는 한달에 백만원인가 걷어 간다고 하던데.."
과거 보안업체의 가정집 서비스는 가스나 도둑 침입에 대한 비상경보 및 출동 서비스로 약 오만원 전후로 서비스를 제공했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대기하다가 일이 생기면 출동하는 것이지 항시 그 지역을 순시하며 치안을 유지하는 방식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대원이 출동할 때마다 추가 비용을 낸다지 않는가. 우리 전습대가 자릿세 대신 치안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천웅방을 비롯한 조직으로 흘러들어가는 돈을 우리가 먹을 수 있음은 물론, 우리의 나와바리도 확대되고 그 재력을 바탕으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곧 우리 전습대가 지역 치안 서비스를 개시할 겁니다. 월 일정액만 내면 천웅방 같은 놈들은 얼씬도 못하고 취객 행패 같은 건 옛날의 추억 거리도 안 될걸요."
"아유 그래? 나야 천웅방 놈들 꼴도 보기 싫은데 잘됐지. 그래서 얼마유?"
"그건 나중에 고지하겠습니다. 아무튼 수고하십쇼."
그리하여 급격히 일이 진행되게 된 것이다.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것은 순찰 및 비상출동 서비스로, 스마트폰 앱과 전화선을 이용한 비상벨을 통한 출동이 이루어진다. 가격은 월 15만원이 기본으로, 구멍가게에서 천웅방이 걷어가는 비용과 똑같다. 여기에 비상 출동 서비스가 여러번이라도 추가 비용이 들지는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계약 관계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에, 천웅방 같은 곳처럼 자릿세만 받아 챙기고 정작 일이 벌어지면 나 몰라라 하지도 않거니와 항의하면 눈 부릅뜨고 협박하는 짓도 안한다. 그리고 보복에 대한 문제도 확실하게 보호해준다.
단, 정식으로 보안 업체로 등록해서 합법적인 형태를 가지지 않으면 나중에 조직의 자릿세 걷어가기와 별 차이 없을 터이니, 정식으로 사업자등록증을 받아 등록했다. 이에 대해서는 내부의 반대도 많았다. 가령 보병지도역상당 이상평 같은 경우는...
"형님... 사업체가 되면 세금도 내야 하고 나중에 꼬투리 잡혀도 잡히는 거 아닙니까? 그냥 다른 데처럼 조용히 자릿세로 하시는 게.."
"그게 지금 우리 위치라는게 애매모호하다는 걸 생각해야 돼. 지금 법과 불법의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타고 있는데 이제 우리는 조직 스타일의 이권사업에 손을 뻗치기 시작할 건데 사실 우리들은 쟤네들이 잡자면 얼마든지 잡을 수도 있다고. 그러니 가능한 한 합법적인 형태를 띠는 게 우리에게는 좋아. 불법 조직은 무차별로 때려잡으면 그만이지만 합법조직은 나름 법의 보호를 받는다고."
사실 일본만 하더라도 야쿠자들이 합법적 회사 형태로 전환한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우리나 야쿠자나 국가권력의 방임 속에서 살 수 있는 것이지 마음먹고 때려잡으려 하면 한큐도 안 걸린다고 보면 된다. 이것을 모르고 오만에 빠진다면 인생 한방에 훅간다는 것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조폭이 검사에게 인상만 써도 검사가 빌빌댄다는 망상은 초딩 시절로 족한 것 아니겠는가? 법은 구속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보호의 양면성을 가진다는 점은 잊어서는 안되는 법이다.
회사명은 전습대 S&P 서비스. 대원들은 모조리 직원으로 등록되었다.
공식적으로 업무를 개시하기 전부터 이미 원곡고 주변의 한국인 가게들은 미리 가입해 있었다. 홍보를 할 때 외국 국적의 사업체라도 차별없이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을 특별히 강조해 놓았지만 중국 및 외국계 가게들의 가입율은 매우 적었는데, 아무래도 외국인들은 자기들끼리 강한 친목으로 결합되어 있었던 탓에 아무래도 어려운 점이 있었다고 봐야 할 수밖에...
하지만 첫달의 수입액은 1600만원 좀 안되는 정도로, 생각 외로 수익률이 좋았다. 아무래도 원곡동 초지동 방면에 외국인들, 그중에서도 중국인들 투성이였지만 의외로 다세대/다가구 주택의 주인은 여전히 대부분 한국인들이었고, 그들이 앞다투어 전습대 시큐리티 & 프로텍션 서비스에 가입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급작스럽게 인력 부족이 표면화되었고, 국방무도협회.... 아니 전습대 내무교도단에서 특별히 선발한 1개 소대, 뇌신대(雷神隊)가 추가로 편제되었다. 나머지 소대도 모두 정수인 40명을 채웠고, 이로써 3개 소대가 구성되어 전습대는 1개 중대 규모로 확대되었다. 이 편제는 구 막부전습대가 채용한 1860년 당시 프랑스식 편제이다.
그리고 교실 하나가 더 징발되어 원곡고 출장본영 주둔병력은 2개 소대로 확대되었다.
그리고 평화로운 출장본영의 맑은 하루,
"이번달 회계 보고에요."
"으잉?"
김추자가 내민 서류철에는 전습대 관련 예산의 현황과 지출 내역이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요시노부가 내주고 간 예산도 공개되어 있었다. 무려 약 2억엔이라는 거금이다.
"요시노부 공이 자기가 지원한 예산은 다 김추자씨에게 일임하고 비밀 운용하는 거 아니었나?"
"훗... 사실 봉행씨가 한철 떴다 지는 껄렁패인지 그래서 예산이나 축내다가 사라질 사람인지 아닌지는 몰랐거든요. 그래서 혹시 몰라서 요시노부 공이 그랬던 거죠. 하지만 이제는 당신을 좀 알 거 같다고 하시네요."
"흐흐흐... 나의 능력을 한번 본 이상 의심쟁이로는 있을 수 없게 된 것이었지!"
"또 이러네, 아무튼 그것도 그렇지만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네요."
"이름?"
"에노모토 카마지로!"
이 이름, 도쿠가와 요시노부라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없긴 할 것이다.
"면접에는 합격했다는 훈령이 내려왔죠. 2억엔의 예산은 한번 자유롭게 써 보라고 하시네요."
김추자가 숨을 들이쉬더니 다시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그 분은 사람을 쉽게 믿지는 않지만, 한번 믿으면 끝까지 믿으시죠. 잘해봐요."
김추자가 돌아서다 뭔가 생각난 듯이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몇번 건드리다 말했다.
"그런데 전습대는 오오토리 케이스케 아니에요?"
"난 그놈 싫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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