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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아부 사이프의 전투의 예술(Kunst des Fech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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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비온 마로쪼 손잡이 줄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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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드소드는 보통 저렇게 쥡니다. 원래 아밍 소드에서 검지를 넘겨 잡으면 컨트롤이 쉬워지고 원심력에 저항하기 좋아 더 빨리 다룰 수 있었는데, 유사시에는 손가락이 확실하게 절단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손가락을 보호하기 위해 가드 위에 핑거링을 달았죠.


이렇게 말이죠. 그런데 이게 한쪽만 있으면 날이 한쪽만 소모되고 보기도 별로니까



이런 식으로 바뀝니다. 양쪽으로 달아놓아서 보기에도 대칭이라 좋고, 핑거링 위에 가드를 달아서 칼날 타고 내려와 손가락 자르는 것도 방어해놨습니다. 이렇게 되면서 검지를 넘겨잡는 그립은 매우 일반화되었습니다.



덕분에 사이드소드 대부분은 이렇게 뒤쪽에 손잡이가 좀 남습니다. 하지만 이 알비온 마로쪼는 끝부분에 질량이 실리고, 덕분에 원심력이 너무 커져서 저렇게 잡으면 검지에 하중이 몰려서 아프고, 손바닥 뒤쪽은 딱히 걸리는 게 없어서 원심력에 저항할 방도가 없었습니다. 잘못된 설계가 문제의 연쇄작용을 일으킨 것이죠. 알비온보다 하급 취급을 받는 중국 폴첸사의 사이드소드는 밸런스가 완벽하여 죽어라 휘둘러도 절대 그런 일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일단 알비온 마로쪼는 사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미 날을 8cm나 잘라냈는데도 이 문제가 있다는 건 정말 큰 문제였죠. 다행히도 사이드소드 유물과 리프로덕션 사진 중에서는 손잡이가 기형적으로 짧은 물건들이 일부 존재했습니다.




사진에서 보이는 대로 어차피 검지 넘겨 잡는게 기본이니까 남는 손잡이는 필요없다고 여기고 확 줄인 것입니다. 소수이지만 있긴 있더군요. 사진의 물건은 이미 단종된 윈들래스 스틸크래프트의 색슨 컷앤스러스트 소드입니다. 사진에서도 보이듯이 손바닥 뒤쪽에 퍼멀이 위치하여 이것이 원심력에 저항하는 걸림턱이 되죠. 이것을 모델로 작업하기로 했습니다.



참고로 이렇게 검지를 안하고 잡을 수도 있겠지만, 사이드소드나 후대의 브로드소드처럼 손잡이가 좁으면 베기시 충격으로 인해 칼이 손 안에서 돌아갑니다. 18세기에는 동유럽에서 전파된 세이버를 경기병용, 전통적인 브로드소드를 중기병용으로 사용했는데 이 브로드소드는 베기시 충격 탓에 칼이 돌아가 첫 베기 이후에는 날면으로 때리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엄지손가락을 거는 링 등이 일찍이 실용화되었지만 사이드소드의 핑거링도 그렇고 활용에 제한이 옵니다. 그래서 손가락 거는 링이 없는 브로드소드도 많았으나 이런 것들은 숙련되지 않으면 날각 유지가 잘 안되었습니다.

참고로 바이킹 소드나 이후 아밍소드는 손잡이가 타원형에 날각 잡기 좋았고, 그렇지 않은 모델은 엄지손가락을 가드 옆에 대어서 날각을 잡았습니다. 롱소드도 그런 식으로 잡죠. 그러나 브로드소드는 바구니형 바스켓힐트가 다 막고 있어서 그렇게 할 수 없었고, 그 점에서 문제가 생겼다고 보면 됩니다.



그리고 위처럼 잡으면 마로쪼의 밸런스 탓에 이렇게 됩니다. 크고 강하게 휘두르면 이렇게 되죠. 웃긴 건 이렇게 잡으면 오히려 칼이 통제가 잘 안되어야 하는데 더 잘 되는 측면도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덕분에 개조를 결심하게 된 이유가 되었죠.



손잡이 분해한 모습입니다. 일련번호가 새겨져 있습니다.





마로쪼 가드 고정. 알비온 마에스트로 라인 제품들은 이런 식으로 가드가 빠지거나 흔들리지 않게 작업이 되어있습니다. 리히테나워나 마이어, I.33같은 블런트는 가드를 리벳식으로 망치로 뭉개서 뒤로 안 빠지게 막는데 가드도 작고 리벳팅 흔적도 안보이는 마로쪼는 어떻게 처리했을지 궁금했었죠. 정체는 슴베에 홈을 파고 가드를 정으로 찍어서 뭉개서 고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퍼멀은 늘 그렇듯이 에폭시본드&피닝 고정입니다. 본드질이라는 것 자체에 경기를 일으키는 사람도 있던데 어차피 이런 거 작업에는 오차가 생기지 않을 수 없고, 본드 안쓰고 부품 덜그럭거리느니 에폭시를 가감없이 사용하여 신뢰성을 잡는 편이 좋다고 봅니다. A&A 페더나 루텔 도검 모두 나사식이라 쓸수록 풀리고 난리가 나지만, 에폭시 작업을 해주니 순식간에 문제가 모두 사라지고 격검에서도 절대로 흔들리는 일이 없었죠.




퍼멀은 토치로 달구어 빼냈습니다. 망치질 자국이 가슴 아프네요. 이걸 잘 해내려면 순식간에 고열로 가열하는 산소 토치와, 달구어져 약해진 퍼멀에 상처가 안 나도록 특별히 만든 지그(틀)이 준비되어야 합니다. 가정집의 부탄가스 토치와 단조망치로는 이정도가 한계인 것 같네요. 퍼멀의 최후가 참담하군요.




완성입니다. 슴베를 그라인더로 갈아내는데 도검이 으례 그렇듯이 슴베쪽은 열처리가 안되있어서 순식간에 갈려나간지라 금방 작업할 수 있었습니다.




대망의 조작감을 말씀드리자면 <좋아졌다>는 아니고 <특성이 바뀌었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손잡이가 줄어들어 퍼멀이 걸림턱 역할을 하는 것에 의해 검의 속도는 물론이고 순간적으로 원하는 지점에서 멈추기가 훨씬 쉬워졌으며 원심력도 잘 잡을 수 있고 검지에 걸리는 피로도 거의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퍼멀 즉 무게추가 2cm정도 전방으로 이동하면서 그에 따라 칼날쪽으로 밸런스가 함께 이동했으며 이로 인하여 검의 회전중심 지점이 변경되었고 무게중심도 다시 순정 때의 가드 기준 11cm, 사이드링 기준 6cm로 돌아왔습니다. 요약하자면 조작성은 향상되었는데 칼날은 무거워졌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겠네요. 이런 부분은 역시 적응이 필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나빠졌다 좋아졌다는 단순한 이분법으로 구분하기 힘든 경우니까요. 여기서 날을 잘라내면 변화가 있을 수 있겠지만 이미 사이드링 기준으로 81cm, 가드 기준으로 86cm라 짧은 편입니다. 더 자르면 사이드링 기준 79cm짜리 유물이 있긴 하나 너무 짧은 것 같고 2cm절단으로 근본적으로 확 달라지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듯 하여, 역시 적응을 거치는 게 나을 듯 합니다.

결론은 알비온 마로쪼는 사지 마시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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