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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아부 사이프의 전투의 예술(Kunst des Fech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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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옷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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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옷은 그냥 전투중 실수했을때 안 죽게 하려고 입는 것입니다.

콜 오브 듀티에 나오는 저거너트나 현실 세계의 전차처럼 중장갑으로 씹어먹으며 몸빵하는 것이 아니란 것이죠. 그런 인식이 생각보다 많았고 이는 동서양 가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두정갑이나 좀 부실한 갑옷을 보면 저러니 죽지 싶을 건데 사실은 그런 것들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죠. 플레이트 아머라고 해도 랜스를 받아내는 왼쪽 어깨와 투구가 제일 튼튼하고 정작 몸통은 1.5mm정도로 전혀 두껍지 않습니다. 손이나 팔다리는 1mm정도일 뿐이죠.

이것은 결국 갑주의 목적이 평시와 다름없이 전투를 하되 페인트에 속거나, 날아온 화살에 죽거나, 뒤에서 습격을 당하거나 혹은 방어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일격을 당했을 때 목숨을 보장하는 것일 뿐이라는 것을 잘 말해줍니다.

일본 갑옷 중 헤이안 시대의 오오요로이는 후대의 일본 갑옷과는 달리 가면도 없고 얼굴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으며 오른팔은 전혀 방어가 되어 있지 않지만 실제로는 기마 궁술이 전투술의 핵심이었기 때문에 활쏘기를 잘 하려고 그렇게 만든 것이었습니다. 백병전은 잘 하지 않았죠. 오히려 예전 시대의 갑옷이 더 방어범위가 높았습니다.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헤이안시대 오오요로이(大鎧)입니다. 그에 비해 가장 왼쪽은 훨씬 옛날인 나라시대의 갑옷인데 방어가 더욱 잘 되어 있죠. 앞서 말한 대로 전술의 차이인데 나라시대에는 방패와 창을 가지고 징집병을 동원하여 전열을 짜고 싸우는 방식이 기본이었기 때문에 저렇지만 헤이안시대에는 징병제가 붕괴하고 무사들을 동원하는 방식인데 무사들의 전투술 기본이 궁술이라 그렇게 된 것이었죠. 그리고 저 허술해 보이는 갑옷이 화살은 특별히 잘 막아줍니다. 넓고 헐렁한 것이 오히려 관통한 화살촉이 몸을 뚫는 것을 막아주고, 투구의 챙과 옆면(마비사시와 후키카에시)는 얼굴로 날아오는 화살을 고개를 숙이거나 얼굴만 돌리면 그대로 막아줍니다. 시야가 탁 트이면서도 말이죠.

갑주의 역할이 단순 몸빵이었더라면 이런 디자인은 애초에 있을 수가 없었을 겁니다. 몸빵이라는 개념도 성립될 수 없는게 기사가 갑주만 믿고 돌입해버리면 밧줄에 걸리거나 할버드, 빌에 걸려서 끌어내려지고 투구 면갑을 들어올리고 단검으로 찍힐 겁니다. 마치 무작정 달려든 전차가 보병이 올라타 화염병과 대전차 수류탄을 이용해 수십억원의 중장비임에도 훅 가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전투중 실수라는 게 온갖 방식으로 일어나기 마련이고 여기에 해외 디자인의 유입이나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많은 발전이 있을 것입니다만 결국 근본은 변하지 않습니다. 찰갑도 정작 보면 웃긴게 철판의 두께가 1mm를 넘는 것이 거의 없으며 정으로 찍어서 구멍을 내는 식으로 가공합니다. 철찰만 놓고 보면 과연 이딴게 보호를 해줄 수 있겠는가, 칼 한대만 맞아도 철판이 우수수 접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지만 은폐 엄폐 잘하고 방패로 막으며 명령에 따라 기동하는 식으로 제대로 스스로를 방어해가면서 싸운다면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오히려 몸빵을 생각하고 무작정 두껍게 만드는 게 이상한 생각인거죠.

갑옷류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이 점부터 확실하게 인식하고 넘어가야만 합니다. 바로 몸빵이라는 건 없다는 거죠. 몸빵은 방패와 방어시설이 하는 것이죠. 초중장기병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공격하고 전투하는 것이지 누구를 보호하기 위해 몸빵하는 임무를 가지고 존재했던 적은 없습니다. 그래야만 우리가 과거의 갑옷을 잘 이해할 수 있으며 비로소 본질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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