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세션에서 막판에 이루어진 ARMA명물 적성검술 죽이기입니다. 원래 한가지 종류의 검술, 한가지 무기만 다루다 보면 점차 연습의 폭이 좁아지고 다양한 스타일을 접했을 때 제 실력도 내지 못하고 당황하다 질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종류를 경험해 보는 것은 필요합니다.
이전의 실험 스파링으로 듀얼링 펜싱 사브르는 롱소드의 공격을 받아내지 못한다는 것이 입증되었기 때문에 이번에 등장한 것은 군용의 영국군 1796경기병 세이버입니다. 이정도는 되어야 롱소드의 공세에 맞설 수 있죠. 또 그래야만 근대검술의 검리를 도구의 문제 없이 체험시킬 수 있으니까요. 하여간 근대검술은 르네상스 검술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포지션이고 명암이 극명하게 갈리는 시스템이라, 르네상스 방식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좋은 서프라이즈가 됩니다.
일차적으로 르네상스 검술이 감각적이고 근접전을 선호하며 공격적이고 연속공격을 중시한다면 근대검술은 시청각에 의지하고 원거리전을 선호하며 방어 우선이라는 특징이 있죠. 르네상스 방식은 전후 전진보다도 붙어서 측면을 잡는 것을 중시하지만 근대 방식은 일직선상으로 움직이는 것을 중시하고 측면에 대한 것은 사실상 버렸다고 봐도 될 정도니까, 한 문화권에서 검술의 경향이 이렇게까지 극명하게 갈리는 경우는 정말 없다고 봐도 될 겁니다.
하여간 영상을 보자면 처음 롱소드로 상대하는 뻬드로햏은 술기의 특성 이전의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번 공격 후 제자리에서 가만히 있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근대검술에서도 공개 자살이라고 할 수 있는 겁니다. 상대의 사거리를 "위험한 간격"이라 규정하고 공격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무조건 뒤로 물러나 한번의 런지로 상대를 벨 수 있는 "완전한 간격"에서 머무를 것을 규정하는 근대검술에서 한번 공격 하고 어리버리하는 것은 사망을 자처하는 것이죠.
특히 리히테나워류 검술은 공격적인 한방을 게임의 키워드로 삼습니다. 적당한 거리에 근접했다면 항상 강력한 베기나 찌르기로 상대를 박살낸다는 기세를 뿜어내면서 돌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이죠. 만일 상대가 물러나도 굴하지 않고 따라가며 맞을 때까지 연타를 가하는 것이 핵심인데 한번 치고 가만있는 건 리히테나워류에서도 좋지 않게 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번 공세가 어긋났다면 기세를 살리면서 연타를 가해야 합니다. 하지만 무작정 연타는 용감한 초보의 최종 테크트리일 뿐이죠. 특히 상대의 공세가 먼저 들어올 것을 이상적인 전제조건으로 삼는 근대검술에서는 상대가 연타를 치면 가까우면 패리를 하면서 물러나다가 검을 내밀어서 알아서 찔리게 하던지 상대가 나를 베기에 애매한 먼 거리에서 베기를 한다면 상대 검이 지나가게 놔두면서 약간 늦은 타이밍으로 상대를 베면 됩니다.
타이밍을 이용한 베기는 리히테나워류에서도 나흐라이센이라 부르며 수행할 수 있는데 만일 타임 공격이 실패하여 상대의 나흐라이센에 노출되었다고 판단한다면 다시 얼마든지 물러나서 상황을 원점으로 돌리면 되는 것이죠. 상대가 무작정 쫓아온다면 타이밍을 잘 보아 검을 내밀어 찔리게 하거나 상대를 멈추게 하는 스탑-스러스트로 기세를 정지시키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일 롱소드로 근대 군사 예술을 잘 잡고 싶다면 필요한 것은 다른 것도 아니고 오직 바인딩을 유지하며 세이버를 봉쇄하면서 달려들어 레슬링을 가하면 필승인 것입니다. 세이버는 방어 후 반격이라는 기본 전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방어와 공격의 딜레이가 눈에 보일 정도입니다. 원을 그리면서 공방은 연결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분명히 둘은 구분되죠. 근대검술은 약간의 거리만 있으면 되고 검이 떼어지기만 하면 필승의 조건이 충족됩니다. 그래서 거리를 주지 말고 검을 떼지 말고 붙인 채로 상대를 압박하여 들어가는 버쉬톨른을 사용하면 반대로 근대검술 필패의 조건이 충족됩니다. 근대검술은 다들 아시는 대로 군사 교육을 위해 많은 면에서 간략화가 이루어졌고 특히 몸싸움이나 근접전에서는 아예 방법이 없기 때문에, 근접만 잘 하면 생초보로 만들어버릴 수 있습니다.
물론 공격적 검리와 근접전 솔루션을 갖춘 18세기의 이른바 "올드 스타일"이 존재하지만 그조차도 기초적인 필링과 바인딩 와인딩, 팔을 잡고 가하는 술기만 좀 있을 뿐 르네상스의 심화된 필링과 바인딩 와인딩, 레슬링에는 상대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설사 내가 근접전에 자신이 없더라도 굴하지 말고 돌진해봐야 합니다. 특히 처음에는 숙련된 근대 검객에게 올드 스타일로 패배하더라도 스파링은 실전이 아닌 연습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백번 맞더라도 백한번 돌진하여 그 감을 찾을 수 있어야만 합니다.
두번째는 소드&버클러의 경우입니다. 버클러는 가만히 들고만 있어도 상단 좌우의 오프닝이 각각 검과 버클러로 막히기 때문에 검 한자루만 쓰는 근대검술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상대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얼마든지 이길 수는 있는데 두번째의 피라타햏은 소드&버클러의 경험이 없어 버클러를 방어용으로, 검을 공격용으로 쓰며 둘의 간격을 벌려 중심부의 오프닝을 노출하는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본래 수도사 루테게루스의 I.33 소드&버클러술은 버클러로 검을 든 오른손에 항상 붙이면서 손을 보호함은 물론 검으로 바인딩하고 버클러로 공격하는 것을 기본으로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는 검이고 하나는 방패이지만 정작 둘다 무기이고 방패라는 탁월한 융통성을 지니며 검과 버클러가 붙어 있음으로 중심부는 항상 닫혀있으면서도 좌우도 그다지 열려있지는 않는다는 까다로운 상황을 만드는 것입니다.
세번째의 단하햏은 I.33매뉴얼을 번역하고 S&B를 잘 쓰는 사람 답게 세이버의 공세를 어렵지 않게 제압합니다. 첫번째의 공방이 아주 이상적인 결과를 보여줍니다. 검으로 막아내고 버클러로 팔을 휘감아 봉쇄함과 동시에 다시 검으로 얼굴을 베어버렸습니다. 그 후에도 지속적으로 근대검술을 잘 죽이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비결은 다른 것이 아니라 돌진에 대항해 후퇴하면서 카운터베기를 가하는 근대식의 대처를 더욱 강화된 돌진과 버클러의 방어로 무너트리면서 근대검객이 대항할 수 없는 근접거리로의 접근을 기세로 수행하여 저의 항복을 받아낸다는 것입니다. 무기에 관계 없이 근대검술을 이기려면 거리를 주지 말고 무기를 봉쇄한다 이 두가지가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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