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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아부 사이프의 전투의 예술(Kunst des Fech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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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의 기억, 알 가브 - 케르벳 나쿠스 : 치명적인 신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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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에 참가하는 부대 :

침투를 맡은 제3군단과 다른 시리아 여단들
러시아 장교 및 장군은 공중 지원을 담당
타이거 부대는 내 지휘하에 있었다.

헤즈볼라 알 라드완 여단과 그 사령관인 순교자 알라 알 보스나 (당의 작전 사령관)
이란 혁명수비대 통제하에 무장한 파테미욘 여단

알 가브 평야가 함락당하고 군대가 케르벳 나쿠스 - 주린의 북서부 전선으로 후퇴한 후, 그날은 2015년 러시아의 개입 첫날이었다.

당시 그들은 우리의 연합군과 함께 하는 것을 절대적으로 거부했고, 그대신 언제나 정규군과 헤즈볼라를 활용했다.

케르벳 나쿠스의 군사 지점은 타이거 부대와 제 76기갑여단이 장악하고 있었다.

전투의 시작 :

우리는 어느날 밤 몇명의 러시아 장군들이 러시아의 자금으로 창설된 제3군단의 장교들을 대동하고 어떤 경고나 예고도 없이 갑자기 도착한 것에 놀랐다. 그들은 시리아 정부가 제공한 최고의 자질을 갖춘 1200명의 병사들에 단대호를 부여했다.

(작전이 완결된 10월 5일자 전황도. 러시아 장교들이 지휘한 이 글의 공세는 9월 31일에 시작되었다.)


그들은 지도를 열고 3개의 화살표를 그려 3개의 돌파선을 알 가브 평야 공세를 맡은 군단의 3개 여단 중 하나에 부여했다. 러시아 장교들은 1시간 안에 전투를 시작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그들은 우리 지역의 타이거 부대나 다른 부대에 아무런 의견도 묻지 않았다.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모든 종류의 항공기와 포병과 로켓포에 의해 강력한 포격이 시작되었다. 목표 지역은 알 지야라-텔 와셋-알 만수르(AlZyarah - Tel Wasset - AlMansour) 지점이었다.

포격 후 3군단의 병력이 노출된 평지로 전진했다. 무장 세력들은 러시아인들의 계획을 이해하고 제3군단을 포위할 수 있는 위치까지 방해하지 않고 오도록 놔뒀다. 분명히 우리에게 경고를 받았는데도 실제로 일어난 일이었다.

제3군단의 모든 병력은 포위되었고, 보급로는 절단되었다. 결국 우리는 모든 수를 쓰면서 보급로를 다시 열고 3군단의 생존자들을 구출했다.

사망자 180명, 부상자는 약 250명,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절대적인 재앙이었다. 러시아인들은 공격 속행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다음날 3군단의 철수를 결정했다. 이번에는 헤즈볼라의 알 라드완 여단과 이란 혁명수비대의 파테미욘 여단을 동원했다.

두번째 날 :

러시아 장교들은 헤즈볼라의 역량을 신뢰했기 때문에 헤즈볼라 사령관 알라 알 보스나와 작전 계획을 짰다. 공격준비포격 이후 부대는 전진하기 시작했고 알라 알 보스나는 그 진격을 감독하고 있었다. 나는 그와 동행하여 그에게 조언하려고 했고, 우리는 그 지역과 무장단체에 대한 지식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절대 우리의 말을 듣지 않고....

당신이 비디오에서도 볼 수 있듯이 순교자 알라 보스나가 행한 가장 치명적인 실수 중 하나는 그가 세 부대를 대각선으로 흐르는 강(역주: 케르벳 나쿠스와 세 마을 사이에는 커다란 농수로가 지난다) 을 건너 적에게로 진격하도록 했던 것이다. 나는 그가 사나이들을 아무런 가치없는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에게 제발 그러지 말라고 간청했다.

(역주: 당시 타이거부대 지휘관이 촬영한 비디오 링크. 행군하는 병사들이 헤즈볼라 알 라드완 여단 병력이며, 영상 왼쪽에서 나와 병력과 합류하는 덩치 좋은 사람이 이날 전사한 지휘관 "아부 후세인" 알라 보스나이다.)

나는 그에게서 모든 희망을 잃어버리고 그에게 말했다. "아부 후세인(알라 보스나의 별명), 이리로 오시오." 그들이 죽기 전에 우리가 그들과 기념 사진을 찍게 해달라고 하자 그는 나를 비웃으며 사진은 혼자서 찍으시라고 말했다. 그의 부하가 승리를 거둘 것이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헤즈볼라 대대는 전멸했다.

나는 순교자들의 시신을 매장하기 위해 끌어낼 수도 없었다.

러시아와 이란 혁명수비대의 지도자들이 진격의 희망을 잃었기 때문에, 그들은 마침내 우리의 조언과 의견을 듣기로 결정했다. 이로써 이 모든 영혼들이 목숨을 부지하고 결정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계획을 다음과 같이 제안했다 :
BMP장갑차 6대와 함께 모든 전선에서 동시에 진격한다. 장갑차들은 공습과 포격 지원 아래 무장 세력의 제1방어선을 점령하기 위한 병력을 1차전에서 수송한다.

우리는 이전 정찰에서 적의 TOW대전차미사일 진지가 1개밖에 없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그래서 그들이 장갑차를 격파한다 치더라도 다른 모든 병력을 태운 장갑차는 목표 전방 1km지점까지 3분안에 도착할 것이다. 이 시간은 TOW대전차미사일이 다른 장갑차를 공격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아니다(역주: 대전차미사일 재장전 속도가 느려서 2차 공격을 못할거라는 뜻)

그리고 우리는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공세에 참여했다. 공세는 계획대로 진행되었고, 만수르 곡물 창고와 탈 와셋 둘 다 점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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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18일 알 가브 평야로 다시 배치중인 타이거 부대의 익명의 지휘관이 트위터 이반 시도렌코 계정(@ivansidorenko1)을 통해 올린 2015년 9월 31일 공세를 회상한 글입니다.

흔히 시리아 내전에서 시리아 정부군은 아무짝에도 쓸모없고 무식한 전술로 들이받을 줄만 알지 러시아 같은 스마트한 지휘나 전투력은 없다 라는 식으로 비하되고 실제로 그런 정황들이 자주 쏟아져 나오는 편입니다만, 이 회상에서는 오히려 러시아 장교단들이 단순무식한 정석만 내놓았다가 병력만 잔뜩 잃고 절망했고, 자신만만했던 헤즈볼라 지휘관들도 예하 병력과 함께 전멸당하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공격준비사격만 죽어라 하다가 멈추고 병력을 전진시켰다가, 무장 세력에게 포위섬멸당하고, 헤즈볼라는 의기양양하게 농수로를 건너 가다가 사격 받고 털리는 한심하고 피눈물나는 모습입니다.

오히려 타이거 부대가 TOW진지의 수량과 위치를 파악하고 6대 보내면 터져도 1대만 터지고 나머지 병력은 안전하게 도착한다는 계산 아래, 포병과 공습 지원을 지속적으로 받아가면서 적의 반격을 차단하면서 손쉽게 돌입, 작전목표를 달성하는 능력을 보여주네요.

물론 타이거부대가 경험이 많고 내노라하는 정예부대인 점은 감안해야겠지만, 최소한 남의 전쟁에 나중에야 개입하는 군대는 초반에 시행착오나 실수를 많이 겪는 건 어쩔 수 없는가 봅니다.

러시아는 이것 말고도 하마 전선에서 11기갑사단을 독촉해서 전투에 나서게 하지만 초반부터 대전차미사일을 맞고 도망가는 한심한 꼴을 보고는 SSO(러시아 특수전사령부), 러시아 용병단을 투입하고, 전투력과 실력이 검증된 부대와 민병대에 지원을 몰아주고(ex: 타이거부대, 리와 알 쿠드스 등) 아예 훈련부터 맡아서 새로 창설한 부대(ex: 5군단, ISIS헌터즈)를 주축으로 굴리는 등 정책 전반이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그 효과는 지금 시리아 국토 대부분을 수복한 현재의 모습이 말해주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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