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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아부 사이프의 전투의 예술(Kunst des Fech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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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호은림 vs 백원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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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호은림은 호랑이가 숲에 숨었다는 뜻이고, 백원출동은 오랑우탄이 동굴에서 뛰쳐나온다는 뜻이다. 둘 다 맹수가 뛰쳐나오는 것을 묘사하고 있으며, 중국무술에서 이런 뉘앙스는 같은데 단어가 대비될 경우 좌,우에 따라 각각 다르게 지칭하는 경우가 있다. 똑같이 뒷굽이로 피했다가 앞으로 치고 나가는 보법인데 이화창법은 왼손이 앞에 있으니 청룡파미, 검경은 오른손이 앞에 있으니 황룡파미라고 부르는 식이다. (아닌 경우는 같은 동작인데 단어만 약간 바꿔부르는 식이다. 태산압정=표두압정, 맹호출림=맹호은림 등)

예전에 조선세법 영상 만들 때에는 밀어치는 찬격세 이후 백원출동세가 나오고 바로 허리를 베며, 삽화도 딱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므로 백원출동세를 왼쪽으로 빠져나가면서 사용하는 것이라고 봤으며, 오른손잡이끼리 맞벨 경우 검의 왼쪽면끼리 맞붙게 되므로 자연스럽게 칼을 저렇게 머리 위로 뒤집어써서 상대가 짓누르는 걸 버티면서 왼쪽으로 치고 들어간다.

사실 손잡이쪽 칼날끼리 붙은채로 뭔가 하려고 하면 가드끼리 걸리거나 손에 칼날이 닿거나 팔뚝이나 주먹이 걸려서 잘 안되므로, 그 상황에서도 저렇게 밀어넣어야만 자유롭게 공세를 이어갈 수 있다. 원거리-근거리를 모두 아우르는 검술이라면 전 세계 어디든 저 자세와 방식이 무조건 있다. 저게 없으면 팔을 걸어내리든 칼을 돌려서 치려고 하든 다 안되기 때문이다.

(리히테나워류의 브레히펜스터-깨진 창문 자세)


그런데 본국검에서는 저게 두가지로 분화되어서 하나는 맹호은림, 하나는 백원출동으로 이원화되어 있으며, 백원출동은 왼쪽으로 칼을 내린 형상이고 본문에서는 오른손 오른발을 든다고 되어 있는데, 든다(擧)는 말은 진짜로 들어올리는것만 말하는 게 아니라 땅에서 들어서 앞으로 내보내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이 경우 본국검의 백원출동은 오른쪽으로 빠져나가는 것이다.

맹호은림은 오른쪽을 향해 두번 돌도록 되어 있는데, 저렇게 상대방 왼쪽으로 빠져나갈 경우 상대방도 똑같이 맹호은림을 써서 자신의 왼쪽(내 오른쪽)으로 빠져나갔다면 서로 지나쳐가게 되니 오른쪽으로 돌아서 다시 마주볼 수밖에 없다. 즉 삽화나 지시를 보면 맹호은림은 왼쪽으로 빠져나가는게 맞다. 이런 식으로 대비된다.

그럼 조선세법의 백원출동은? 왼쪽인가 오른쪽인가? 찬격세에서 백원출동 다음 허리를 베는데, 왼손 왼발이라고 구체적으로 지시를 한다. 또 왼쪽으로 빠져나가는 맹호은림세와 삽화에서 왼발을 내딛고 칼을 뒤집어 쓴 것도 일치한다. 이러면 왼쪽으로 가는게 맞다고 볼 수밖에 없다. 물론 왼발을 내딛어도 오른쪽으로 빠져나가면서 허리를 칠 수는 있다. 그렇다면 백원출동만 있었고 방향구별이 없었는데 조선측에서 방향에 따라 왼쪽 맹호은림-오른쪽 백원출동으로 분화시킨건지, 아님 원래 둘은 분리되어 있었고 백원출동이 오른쪽이었던 건지 판단해봐야 하는데, 이 경우 본국검과 조선세법의 연관성에 대해 추측해봐야 한다.

최소한 본국검이 형성된 시점인 현종 시대에 무신들은 무비지와 조선세법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현종14년 4월 1일자 승정원일기 기사를 보면 현종이 무신 유혁연에게 본국검이 어디서 나오냐고 묻자 무비지에 나오고 조선국도(朝鮮國刀)라고 쓰여 있었다고 말한 것을 알 수 있는데, 무비지에 나오는 조선검술은 조선세법밖에 없다. 그리고 본국검과 조선세법은 연관되는 단어가 자주 나온다. 태산압정=표두압정, 안자, 찬격, 장교분수, 전기, 발초심사 등등

본국검 자체는 기존의 중구난방으로 돌아가던 검술을 어느정도 통합 정리하고자 했던 프로젝트의 결과물스러운 모습이 엿보인다. 진전살적 같은 건 기효신서 장도의 단어이고, 나머지들은 조선세법에서 나오는 자세명이거나 그 변형이다. 이걸 봄면 장도-조선세법의 통합이 의도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이 통합정비계획이 수행될 때 조선세법을 배워온 사람이 참여해서 무비지에 기록되지 않은 자세나 세법까지 다 알고 있었다면 원래 맹호은림과 백원출동이 따로 있었던 것이라 보면 되겠지만, 만일 책과 그림만 어떻게 찾아내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다가 막히는 부분을 명나라 무술을 통해 채워넣은 것이라면 나중에 맹호은림과 백원출동으로 분리되었다고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출처를 묻는 현종의 질문에 유혁연이 사람이 아니라 책을 언급하는 것을 보아 무비지 조선세법을 보고 복원프로젝트를 가동한 것에 더 신빙성이 있다고 보는데, 나중에 영조대에 나타난 "예도"라는 검술에선 전승자의 신상과 훈련 현황을 자세하게 브리핑하기 때문이다. 만일 본국검이 고대 검술이거나, 아니면 조선세법의 전수자가 프로젝트에 참여했다면 책을 출처로 대지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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