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는 본국검이 어영청사례를 보면 인조6년에 기사가 나와 생각보다 최초라고 말했었는데, 해당 사료를 보면 여러 사료가 짜집기되어있는 문장이고 본국검이 언급된 부분은 정종 무술년(正宗戊戌) 이라고 되어 있어 훨씬 후대입니다. 정종은 우리가 아는 그 정조 이산입니다. 원래 정종이었다가 나중에 정조로 추존된 것이죠.
그래서 본국검이 언급된 가장 오래된 사료는 승정원일기 현종 14년 3월 11일, 즉 1673년입니다. 이때 관무재 시험을 본 기록에 본국검이 있으니, 실제로는 조금 더 전부터 도입이 되기는 했을 것입니다. 인조1년부터 승정원일기가 남아있으니까 본국검의 제작 연대는 효종 14년 3월 이전의 어느 시점이라고 보면 될겁니다.
본국검은 알려진 대로 주로 어영청에서 수행되었지만 18세기 들어서는 인기가 거의 없다가, 순조 20년(1820, 경진) 10월 2일자 어영청중순등록(御營廳中旬謄錄)을 마지막으로 기록이 나오지 않습니다.
반면 제독검은 승정원일기 현종 5년 4월 13일, 즉 1664년으로 본국검 등장보다 9년 전에 처음으로 언급됩니다. 최후 언급은 지구관청헌일기(知彀官廳憲日記) 고종 17년(1880, 경진) 4월 30일로 상당히 늦게까지 훈련되었다는 걸 알 수 있네요.
하여간 실수로 잘못된 인식을 퍼트린 죄 크고, 앞으로는 영상 만들때 괜히 지우고 올리고 하지 않게 검술 자체만 영상으로 만들고 부연설명은 따로 하는게 좋겠습니다.
그래서 본국검이 언급된 가장 오래된 사료는 승정원일기 현종 14년 3월 11일, 즉 1673년입니다. 이때 관무재 시험을 본 기록에 본국검이 있으니, 실제로는 조금 더 전부터 도입이 되기는 했을 것입니다. 인조1년부터 승정원일기가 남아있으니까 본국검의 제작 연대는 효종 14년 3월 이전의 어느 시점이라고 보면 될겁니다.
본국검은 알려진 대로 주로 어영청에서 수행되었지만 18세기 들어서는 인기가 거의 없다가, 순조 20년(1820, 경진) 10월 2일자 어영청중순등록(御營廳中旬謄錄)을 마지막으로 기록이 나오지 않습니다.
반면 제독검은 승정원일기 현종 5년 4월 13일, 즉 1664년으로 본국검 등장보다 9년 전에 처음으로 언급됩니다. 최후 언급은 지구관청헌일기(知彀官廳憲日記) 고종 17년(1880, 경진) 4월 30일로 상당히 늦게까지 훈련되었다는 걸 알 수 있네요.
하여간 실수로 잘못된 인식을 퍼트린 죄 크고, 앞으로는 영상 만들때 괜히 지우고 올리고 하지 않게 검술 자체만 영상으로 만들고 부연설명은 따로 하는게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