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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아부 사이프의 전투의 예술(Kunst des Fech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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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습대 43화 사랑의 김 아무개(5) 하극상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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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결투 날. 증인으로써 나와 전습대 간부들은 물론, 전습대 대원에 이어 학교 선생들, 여기에 학생들도 창문으로 죄다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다. 여기에 대치동 김씨와 대치동 누님도 함께다. 대치동 김씨는 우리의 김 아무개에게 손을 대면 죽인다면서 3m의 대치도를 가져 오려고 했지만 누님의 발광으로 못 가져온 듯 하다. 누님의 손에는 육척(180cm)짜리 봉이 들려있다.

인조 잔디가 깔린 운동장 한복판에 선 김 아무개는 상당히 긴장한 눈치다. 하얀 와이셔츠에 짧은 멜빵바지 차림으로 움직이는 데에도 문제가 없다. 머리는 뒤로 묶었다. 손에는 손목까지 가리는 가죽장갑이다.

그 앞에 있는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구두를 신고 검은 양복 바지에 줄무늬 와이셔츠, 그 위에는 전습대 특유의 100% 울을 자랑하는 군청색 옷감으로 만들어진 조끼를 걸치고 있다. 허리춤에는 평범한 덴쇼 스타일의 카타나를 차고 있다.

그들 앞으로 걸어온 대치동 누님이 죄다 숨죽이고 구경하는 가운데 봉을 양손으로 잡고 아무개와 요시노부 사이의 빈 공간에 대자, 아무개는 m1902를 꺼내어 들었고 요시노부도 카타나를 꺼내어 중단 자세를 취했다.

"시작!"

대치동 누님이 시작 신호를 내리며 봉을 들어올리자 싸움이 시작되었다. 아무개는 결국 이기든 지든 어차피 처벌은 받겠지만 기왕 처벌을 받는다면 차라리 이기고 받겠다는 입장이었다. 지고 나서 혼란스러워했지만 결국 검객은 검객이다. 이기고 싶다는 마음만큼은 아직 그녀에게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 나이대에 누군들 말린다고 듣겠는가?

김 아무개는 긴장하고 있었지만 그 이면에는 자신감도 엿보였다. 칼이 바인딩되었을 때 치고 들어오거나 거리를 벌리지 않는 경우에 대해 그녀는 이전까지 대비가 없었고, 카운터 찌르기를 하면 된다고만 생각했지만 실제론 잘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제는 그런 부분에 대한 방법을 스캇츠 올드 스타일을 통해서 배울 수 있었던 것이다. 단 머리로만 아는지 실제로도 잘하는지는 이제부터 두고봐야 알 문제다.

두어 번 스텝을 밟으며 거리를 재던 김 아무개가 짧게 머리를 쳤다. 하지만 이것은 페이크였다. 김 아무개가 왼발을 오른발로 끌어당겨 붙이는 것을 눈치채이지 않도록 머리베기에 시선이 가게 만든 것으로, 요시노부가 움찔하는 것을 포착함과 동시에 빠르게 두번째 공격이 들어갔다. 이번에도 똑같은 머리치기였고 요시노부는 다른 곳으로 베기가 들어올 줄 알았는지 약간 당황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살짝 뒤로 빠지면서 피하려고 시도했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개가 왼발을 오른발과 붙인 만큼 평상시보다 좀 더 긴 런지가 가능해진다는 것이 문제였다.

"!!"

예상과는 달리 맞을 것을 직감한 요시노부가 카타나를 들어올리면서 칼날 옆면으로 세이버를 쳐냈다. 스리아게라 불리는 기술이다. 하지만 스리아게는 상대가 완전히 풀컷으로 베어내려야만 완벽하게 이루어진다. 아무개의 베기는 머리만 툭 치는 정도의 베기였으니 베기 라인에서 쳐내어졌지만 회수하는 것도 그만큼 빨랐다. 그래서 뒤이어 가해진 요시노부의 머리베기를 김 아무개가 칼을 수평으로 세워 막아낼 수 있었다.

머리가 막힌 것을 직감한 요시노부가 칼을 떼자 아무개의 칼이 요시노부의 칼을 따라갔다. 이것은 옛말에 따르면 <위에 신경을 너무 써서 아래에 창피를 당하는> 상황이 되기 딱 좋은 상황이다. 그것을 놓치지 않고 요시노부가 칼을 뒤로 크게 돌려 올려베기를 시도하자 아무개는 세이버 검술의 정석대로 칼끝을 상대에게 향하고 칼자루는 자신의 왼쪽으로 향한 카트(Carte)자세로 막아냈다. 그러나 역시 올려베기를 막아내는 데에 급급했는지 칼끝은 요시노부의 몸이 아닌 왼쪽 허공을 향하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아무개의 칼은 상대를 위협하지 못하므로 안심하고 들어오게 된다. 요시노부는 승리를 직감했는지 표정이 여유로웠다.

하지만 그 표정은 곧 당황으로 바뀔 수밖에 없었는데, 칼을 떼어내려고 하였지만 아무개가 칼을 계속해서 붙인 상태로 유지하였고, 요시노부가 칼을 들어올릴 때까지 따라붙더니 칼끝을 뒤로 넘기면서 요시노부의 칼을 흘리려고 시도했다. 이것을 눈치챈 요시노부는 곧 미는 힘을 줄이고 그자리에서 뒤로 물러나려고 했으나, 아무개가 왼손으로 요시노부의 팔을 잡고는 칼을 뒤로 빼어 찌르기를 시도했다.이것이 바로 스캇츠 올드 스타일의 비전 중 하나인 터키쉬 디스암(Turkish disarm)이다. 당황한 요시노부는 팔을 힘으로 억지로 빼내면서 몸을 돌려 찌르기를 피하고는 빠르게 뒤로 빠져나갔다.

그런데 이것이 실수였다. 세이버 검술은 원거리 도법. 거리를 주면 크게 불리하다. 더군다나 카타나는 현대도가 보통 하바키 포함 75cm정도의 칼날 길이를 가지고 있지만, 세이버는 보통 83cm정도인데다 한손으로 쓰므로 간격이 훨씬 길다. 여기에 간격을 최대한 살리는 런지를 비롯한 근대 군사예술의 보법이 더해지면 원거리에서 가공할 위력을 발휘한다. 뒤로 빠지는 요시노부를 쫓아 두스텝 정도 따라간 김 아무개가 세 스텝 째에서 길게 런지를 개시하며 대각선으로 후려치자 요시노부는 팔이 맞을 지경이 되었으나 칼에서 왼손을 떼어 양손을 옆으로 뻗으며 몸을 뒤로 기울여 피했고, 다시 대상단의 자세로 칼을 머리 위로 들어올린 시점에서 김 아무개는 다시 자세를 회복한 다음 이번에는 더 가까운 거리에서 대각선 내려베기로 공격을 개시했다.

칼이 부딪쳐 X자로 교차한 시점에서 요시노부가 힘으로 밀어붙이려고 하였으나, 아무개가 곧 칼을 접촉시킨 상태에서 칼끝을 요시노부의 칼등 쪽으로 집어넣어 세이버가 요시노부의 칼과 몸 사이의 공간으로 비집고 들어간 형상이 되었다. 이대로 밀어붙이면 오히려 요시노부의 얼굴이 맞게 된다. 요시노부는 일도류와 신카게류를 배운 검객 답게 침착하게 카타나의 자루를 머리 높이로 들어올리자, 아무개의 세이버는 카타나의 칼날을 타고 들어가다가 쯔바(원형 가드)에 막히는 형상이 되었다.

이때 요시노부가 왼손을 칼에서 놓아버리고 왼발을 전진시켰다. 순식간에 요시노부의 왼팔이 날아들어 다른 곳을 치기 위해 칼을 떼어네고 있던 아무개의 오른손을 잡아챘고, 곧 요시노부는 카타나를 던져버린 다음 오른손으로 아무개의 m1902세이버의 커다란 가드 위쪽을 붙잡고서는 홱 뺏아 버렸다. 세이버의 운용을 위해 칼을 가볍게 잡고 있던 아무개로써는 이런 순식간의 상황에 대응할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칼을 빼앗겨 내던져지자 아무개는 뭔가 반항하려고 했지면 요시노부가 발끝으로 아무개의 앞으로 나온 오른발 끝을 강하게 밀어버리자 중심을 잃고 앞으로 쓰러졌다. 바로 앞에 요시노부가 있었으므로 요시노부의 몸의 얼굴을 미끄러트리며 땅으로 엎어질 형상이었는데, 요시노부가 그새 오른발을 전진시키며 오른팔로 아무개의 허리춤을 강하게 끌어안아서 엎어지지는 않게 되었다.

이것은 지난번과 비슷한 시츄에이션 아닌가? 아무개는 허리가 조여진 탓에 뭔가 크게 놀랐던 듯 잠시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가 요시노부의 얼굴을 보고는 얼굴을 붉히며 뭔가 화를 내는 듯 했다.

그런 김 아무개를 향해 요시노부가 뭐라뭐라 말하는 듯 입을 움직였는데, 아무개의 표정이 당황했다가, 놀라는 듯 했다가, 감격하는 듯 했다가, 얼굴이 빨개지더니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 듯 했다. 나와 대치동 김씨, 교사들, 학생들, 전습대 간부와 대원들 모두 예상도 못한 전개에 도무지 상황이 이해가 안되서 눈만 꿈뻑거리고 있는데, 요시노부가 심판역인 대치동 누님에게 손짓을 하자 아까부터 혼자 함박웃음에 얼굴이 터질 듯 한 누님이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요시노부에게 뭔가를 던져주고는 다시 뒤로 물러섰다.

요시노부의 오른팔이 아무개의 허리를 더 강하게 끌어안으면서 마이크를 들고 천천히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전교생과 교사들과 전습대원들을 눈으로 훑어보더니 자기에게 집중된 시선을 확인한 듯 마이크를 입에 대고, 큰 소리를 그것도 무려 한국말로 외쳤다.

"나 전습대 총재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내 아내에게 영원히 내 곁을 떠날 수 없는 중벌을 내리노라!!"

마이크가 땅에 던져짐과 동시에 요시노부가 왼팔로 아무개의 머리를 감싸안았고, 동시에 대치동 누님을 비롯해 간부들부터 박수치면서 휘파람을 불고 펄쩍펄쩍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간부들의 경거망동은 곧 아무도 신경쓰지 않게 되었다. 학생들의 폭풍 함성과 박수가 전교를 휩쓰는 탓에 죄다 가려졌기 때문이다.

한참 박수와 함성이 벌어지는 가운데 대치동 누님이 운동장 한가운데로 뛰어나와서는 전교생을 향해 뭐라 외치며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곧 그 입모양을 본 덴슈요부로 김무정과 덴슈로쿠로 김석원이 대원들에게 뭐라뭐라 말하기 시작했고, 대원들도 여기에 호응하면서 점점 퍼져나간 이 단어는 곧 학생들까지 똑같이 외치게 되었다.

"뽀뽀해! 뽀뽀해!"

이윽고 요시노부가 왼팔을 풀고 아무개를 잠시 바라본 다음 키스하려고 하자 김 아무개가 눈을 감았다. 폭풍 환호성이 여리고 성벽을 수십개라도 무너트릴 만큼 거대해지는 순간 대치동 김씨는 맛이 갔다.

"난 이 결혼 반댈세!!!"
대치동 김씨가 뛰쳐나갔다.
"나도! 우오오옷!!!"
나도 뛰쳐나갔다.

"호샤노 찐뽀무시(방사능 좇벌레), 코로스!!(죽인다!) 가게끼죠 반자이이이이!!!!(하극상 만세에에에)"

왼발과 오른손이 마치 혼연일체가 된 것마냥 동시에 나가던 우리 둘 중, 그런데 대치동 김씨가 왠지 땅에 구르는 것 같아서 옆을 보는 순간 명치에 강한 충격이 오며 곧 땅이 하늘이 되는가 싶더니 큰 충격을 받고 반쯤 정신을 잃었다.

오락가락하는 정신머리 속에서 들려오는 것은 "이 남정네들이 갑자기 왜이래?" 하는 대치동 누님의 목소리였다. 왠지 축복받는 사랑의 두사람 앞에 널부러진 두명의 딸바보들은 적절한 개그 구도가 아닌가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푸른 하늘 아래 이런 것도 필요하지 않은가. 내가 생각해도.. 좋은 센스다.

곧 핵폭탄 터지는 급의 환호성이 울려퍼졌지만 나는 그 이유를 볼 수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다. 안보여 안들려 난몰라... 흐헣헣ㅎ헣

정신을 잃지는 않았지만 한참 분위기 좋은데 일어나면 쪽팔릴 듯 하여 대충 상황이 마무리될때까지 누워있고 죽은척 했다가 간부들이 일으켜세워주는 걸 핑계삼아 정신 차린 듯 연기해가며 일어났다. 창문에서 학생들 모습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학교는 시끌시끌한 가운데 도저히 사무실로 들어갈 생각이 안 들어서 학교 뒤쪽으로 갔더니만 다크 소각로 옆에서 김추자가 쪼그려 앉아서는 훌쩍거리고 있었다.

"김추자씨 우능가?"

날 보고는 급히 눈물을 닦으며 일어나려고 했지만 눈물이 더 쏟아지는 듯 얼굴이 더 울상이 되었고 도로 주저앉으면서 엉엉 소리를 내며 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 손수건은 원래 안 가지고 다니는지라 물티슈를 주었더니 내 손을 팍 후려치고는 소매를 붙들고 얼른 앉으라는 듯 끌어당기길래 순순히 앉았더니만 나의 100%울 재질의 프록 코트에 얼굴을 대고는 그 상태로 30분을 더 울었다. 으.. 울 옷감 수축하는 소리가 들린다...

어느 정도 진정되고 나서 김추자가 한 말은 다음과 같았다.

"짝사랑이란 괴롭네요..."
"요시노부 공이 좋았으면 왜 진작 덮치지 않고?"

"그분은 여자 졸 많거든요? 훌쩍..."

그리고는 신세 한탄이 시작되었는데, 원체 중언부언에 같은 말이 반복되었으므로 자세한 내용은 생략한다.

"난 이제 안 울거야. 이젠 짝사랑도 필요없어. 이젠 재밌는 것만 보고 살거야..."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데 요시노부 공처럼 한국말 못하는 척 하지만 사실은 다 할줄 안다던가 그런 건 아니겠지요?"
"이건 할 줄 알아요. 게데지야!!"
"뭐요?"
"게데지!!"

그러면서 내 가짜 콧수염을 도로 팍 떼서는 일어서면서 서너 걸음 도망치다가 뒤를 홱 돌아본다. 주머니에서 예비 콧수염을 꺼내다 붙이는 걸 본 김추자의 안색이 갑자기 급 어두워졌으므로, 나는 예비 콧수염을 뒤로 던져버린 다음 그녀를 쫓아갔다. 그녀는 밝은 얼굴로 도망치다 나를 뒤돌아보면서 말했다.

"게데지, 제미따!"

어설픈 한국말로 말이다.

다음날, 수업이 끝나고 방과후에 요시노부가 전습대 사무실에 늘 그렇듯이 들어왔는데, 뒤에 조그만 여자아이가 따라들어왔다. 당연히 그 정체는 김 아무개이다.

"니가 여기 왜들어오나?"
"그녀는 영원히 내 곁을 떠날 수 없는 중벌을 받았으니 말이야. 그녀에게도 좋은 보직이 필요할 것 같은데 어떤가?"

나를 제외한 다른 간부들의 얼굴에 급 아빠미소가 지어졌다. 곧 여원홍이 미소를 띠고 좋은 보직을 제안했다.

"총재에게는 개인 비서가 필요한데 아직 없습니다. 필요합니다."

김 아무개가 방과후 비서로 전습대에 합류하게 된 사연이 뭐.. 이와 같았다.

나중에 대치동 누님에게 그날 요시노부가 아무개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물어보았다. 간단히 말해서 요시노부는 이미 한국말을 어느 정도는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 있었고, 학칙상 아무개가 자신에게 덤빈 죄로 매를 맞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이미 아무개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 그녀도 괜찮고 모두가 괜찮아질 수 있는 길을 모색하였는데, 나를 몰아붙여서 결정권을 자기가 얻어낸 다음 결투 형식으로 그녀와의 두번째 스킨쉽 기회를 얻어낸 다음 그 나이대의 여자아이가 으례 그렇듯 심리적으로 혼란한 상태를 조장하고는 그 틈에 모든 것을 알려주고, 뭐 그렇게 해서 잘 해본다는 계획이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요시노부 혼자의 생각이라기보다는 대치동 누님이 같이 꾸민 거시기라고 한다. 누님 왈로는 여자는 결국 남자하기 나름이고 좋은 남자를 찾기는 힘든 법이니 기회를 놓치면 안되니까 그랬다고. 하지만 누님의 본심을 엿볼 수 있는 한마디가 나왔는데 여자의 로맨스는 그 나이대에 이루어져야 평생을 간다고 한다. 사실 여부야 어쨌든 누님의 로망 판타지를 엿볼 수 있는 한마디였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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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습대 44화 청웅 사타부언
언젠가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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