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의 집권 가문인 아사드 가문은 알라위파이며, 겉으로는 아랍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종교 민족을 초월한 세속주의 정권으로 알려졌지만 실제 정권 핵심은 알라위파들에게만 허용되어 온 것은 시리아에 관심을 가진 관찰자들이라면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시리아 내전에서 아사드 정권은 알라위파와 기독교, 시아파와 기타 소수종파로부터 절대적 지지를 받는 것도 그런 탓이라고 여겨져 왔다.
그렇다면 알라위파는 기득권으로써 월등한 정치경제적 지위를 누려왔는가? 사실 이러한 질문에 관해 대답하자면 그렇지는 않다고 대답할 수 있다. 오히려 알라위파들은 아사드 정권에 의해 자신들의 많은 부분이 희생당했다고 주장한다. 종교적 정체성부터 사회적 진출 기회까지 모든 면에서 말이다. 이런 인식 탓에 사실 시리아 민주화 운동 때 라타키아, 타르투스 같은 알라위파 지역에서도 민주화 시위가 벌어졌었고, 초기 자유 시리아군에 알라위파가 일부 가담하기도 했다. 이는 서방의 관찰자들을 혼란시킨다. 정권 기득권의 자격을 갖추었음에도 왜 아사드 정권에게서 도움을 받기는 커녕 오히려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시리아는 어느 면에서는 과거 한국과 닯아 있다. 박정희는 경북 하층민 출신이었고 경북은 일제시대 대일곡물수출로 경제적 사회적 지위를 누린 호남 지주세력에 비해 가난했다. 그리고 정권을 잡은 이후 이에 대한 반동으로 대구 경북 이른바 TK인사들을 중점적으로 기용하였다. 실제로 김영삼정부때까지 TK인사의 영향력은 엄청났고, 요직에는 TK가 아니면 오르기가 힘들었으며 이러한 것을 보면 대구 경북은 지역 전체가 기득권이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런 외부 관찰자들의 시각과는 달리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일할 기회는 더 많았을 수 있을지언정 하층민은 그대로 하층민일 뿐이었던 것이다. 다만 지역적 정서적인 동질감과 인맥 네트워크가 TK인사들의 진출을 더욱 쉽게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비슷한 상황 속에서 알라위파는 오히려 종교적인 자숙을 강요받았다. 하페즈 알 아사드는 수니파들에게 이단 천것으로 취급받는 자신들의 처지를 잘 알았으며 종파적인 아이덴디티를 유지하는 것은 정치적 자살행위임을 잘 알았다. 자신의 출신을 희석시키고 종파감정을 묻어두기 위해서는 세속주의 바트주의를 강화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대다수 이슬람 종교행사와 완전히 유리된 전통을 가진 알라위파의 종교제식을 완전히 뜯어고칠 필요가 있었다. 통합된 국민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알라위파가 달라져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를 위해 하페즈 알 아사드는 알라위파의 샤머니즘 행사를 금지시키고 곳곳에 수니파 스타일의 알라위파 모스크를 지었으며, 수니파의 양식을 모방한 기도 의식을 강제시켰다. 또 정권 핵심부에는 아사드 가문의 친인척이 대거 진출했지만, 정작 알라위파가 모든걸 다 해먹는다는 의식을 없애기 위해 알라위파는 고의적으로 인사에서 불이익을 받거나 배제당했다. 하페즈 알 아사드는 알라위파이긴 했으나 근본적으로 국가주의자였고, 시리아라는 국가의 이름 아래 모든 국민의 정서는 통일되어야만 했다. 알라위파가 고유의 의식을 금지당하고 불이익을 당하는 것 정도는 그에게는 오히려 사소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무슬림형제단 같은 종교 극단주의자들을 제외하면 대다수 시리아 국민들의 눈에는 좋은 것으로 여겨졌다. 물론 눈가리고 아웅일 뿐이라는 것은 다들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아무리 대단한 국민감시 체계를 구축한다 한들 국민정서에 정면으로 거스른다면 아무리 훌륭한 지옥의 독재자라고 하더라도 절대 정권을 수호하지 못한다. 오히려 독재자라는 것은 국민들의 눈치를 누구보다 보면서 경계를 풀게 만들고 그 사이로 서서하게 침투할 줄 아는 것에서 그 실력이 판가름나는 법이다. 그 누구도 사회에서 타인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알라위파는 지금 시리아에서 아사드 정권을 지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 아사드에 대한 사랑에 의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다만 자신들이 아사드 정권 하에서 감내해야 할 희생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것-강제 개종과 학살-을 반군에게 강요받을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아무리 비통함 한잔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모든 사소함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하루하루라도 가족 친지와 죽어서 눈을 감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인식 말고는 할 수 없게 만드는 종파적 종교적 극단주의 말고는 달리 선택하지도 않고 통제도 불가능한 반군의 존재는 씁쓸한 정권 지지의 원인이 된다. 그것이 반군의 한계이기도 하다.
tag : 시리아내전, 알라위파, 현실은시궁창
그렇다면 알라위파는 기득권으로써 월등한 정치경제적 지위를 누려왔는가? 사실 이러한 질문에 관해 대답하자면 그렇지는 않다고 대답할 수 있다. 오히려 알라위파들은 아사드 정권에 의해 자신들의 많은 부분이 희생당했다고 주장한다. 종교적 정체성부터 사회적 진출 기회까지 모든 면에서 말이다. 이런 인식 탓에 사실 시리아 민주화 운동 때 라타키아, 타르투스 같은 알라위파 지역에서도 민주화 시위가 벌어졌었고, 초기 자유 시리아군에 알라위파가 일부 가담하기도 했다. 이는 서방의 관찰자들을 혼란시킨다. 정권 기득권의 자격을 갖추었음에도 왜 아사드 정권에게서 도움을 받기는 커녕 오히려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시리아는 어느 면에서는 과거 한국과 닯아 있다. 박정희는 경북 하층민 출신이었고 경북은 일제시대 대일곡물수출로 경제적 사회적 지위를 누린 호남 지주세력에 비해 가난했다. 그리고 정권을 잡은 이후 이에 대한 반동으로 대구 경북 이른바 TK인사들을 중점적으로 기용하였다. 실제로 김영삼정부때까지 TK인사의 영향력은 엄청났고, 요직에는 TK가 아니면 오르기가 힘들었으며 이러한 것을 보면 대구 경북은 지역 전체가 기득권이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런 외부 관찰자들의 시각과는 달리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일할 기회는 더 많았을 수 있을지언정 하층민은 그대로 하층민일 뿐이었던 것이다. 다만 지역적 정서적인 동질감과 인맥 네트워크가 TK인사들의 진출을 더욱 쉽게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비슷한 상황 속에서 알라위파는 오히려 종교적인 자숙을 강요받았다. 하페즈 알 아사드는 수니파들에게 이단 천것으로 취급받는 자신들의 처지를 잘 알았으며 종파적인 아이덴디티를 유지하는 것은 정치적 자살행위임을 잘 알았다. 자신의 출신을 희석시키고 종파감정을 묻어두기 위해서는 세속주의 바트주의를 강화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대다수 이슬람 종교행사와 완전히 유리된 전통을 가진 알라위파의 종교제식을 완전히 뜯어고칠 필요가 있었다. 통합된 국민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알라위파가 달라져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를 위해 하페즈 알 아사드는 알라위파의 샤머니즘 행사를 금지시키고 곳곳에 수니파 스타일의 알라위파 모스크를 지었으며, 수니파의 양식을 모방한 기도 의식을 강제시켰다. 또 정권 핵심부에는 아사드 가문의 친인척이 대거 진출했지만, 정작 알라위파가 모든걸 다 해먹는다는 의식을 없애기 위해 알라위파는 고의적으로 인사에서 불이익을 받거나 배제당했다. 하페즈 알 아사드는 알라위파이긴 했으나 근본적으로 국가주의자였고, 시리아라는 국가의 이름 아래 모든 국민의 정서는 통일되어야만 했다. 알라위파가 고유의 의식을 금지당하고 불이익을 당하는 것 정도는 그에게는 오히려 사소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무슬림형제단 같은 종교 극단주의자들을 제외하면 대다수 시리아 국민들의 눈에는 좋은 것으로 여겨졌다. 물론 눈가리고 아웅일 뿐이라는 것은 다들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아무리 대단한 국민감시 체계를 구축한다 한들 국민정서에 정면으로 거스른다면 아무리 훌륭한 지옥의 독재자라고 하더라도 절대 정권을 수호하지 못한다. 오히려 독재자라는 것은 국민들의 눈치를 누구보다 보면서 경계를 풀게 만들고 그 사이로 서서하게 침투할 줄 아는 것에서 그 실력이 판가름나는 법이다. 그 누구도 사회에서 타인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알라위파는 지금 시리아에서 아사드 정권을 지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 아사드에 대한 사랑에 의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다만 자신들이 아사드 정권 하에서 감내해야 할 희생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것-강제 개종과 학살-을 반군에게 강요받을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아무리 비통함 한잔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모든 사소함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하루하루라도 가족 친지와 죽어서 눈을 감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인식 말고는 할 수 없게 만드는 종파적 종교적 극단주의 말고는 달리 선택하지도 않고 통제도 불가능한 반군의 존재는 씁쓸한 정권 지지의 원인이 된다. 그것이 반군의 한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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