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antcast
Channel: 아부 사이프의 전투의 예술(Kunst des Fechten)
Viewing all articles
Browse latest Browse all 1681

생활검술

$
0
0
자신이 투자한 노력과 땀만큼 실력이 대각선으로 상승해가는 다른 운동과는 달리 검술은 계단식의 실력 상승 패턴을 보인다. 즉 한참 정체되다가 갑자기 팍 오르고 다시 정체되다가 올라가는 식이다. 나 같은 경우 4번의 그런 경우를 겪었는데 4번의 경험을 가지고도 사실 이 간격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는지에 대해 도무지 잘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건 지속적으로 해 나가면 언젠가는 실력 상승의 날이 오긴 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검술은 깨달음의 운동이라고 한다.

이른바 무술인 그룹들 중에서 간혹 보이곤 하는 정서는 마치 봉건기사 계급을 연상하게 한다. 그들은 스파르타 지옥훈련을 하는 것이야말로 최소필요충분조건으로 인식하고 있는데 최소한 검술에서만큼은 그런 지옥훈련이 해줄 수 있는 건 한계가 있다.

정확히는 초기 단계에서는 그런 게 필요하다. 사실 스파르타급, 정확히 말해 엘리트 체육 수준이나 그에 근접하고자 하는 훈련이 필요한가 하면 꼭 그렇지는 않고 생활 체육에서 좀 힘든 정도까지만 해도 충분하다. 그 이유는 결국 사람의 머슬메모리를 갈아치워야 하는데 그 이유가 있는데 일반인들은 평소 자기가 움직이던 방식대로 몸이 프로그래밍 되어있기 때문에 일단 이걸 검술에 맞는 움직임을 끼워넣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나의 경험에 의하면 여기에는 다른게 필요가 없다. 정확한 동작으로 무조건 땀나고 힘들때까지 해줘야만 한다. 그리고 땀나고 힘들 때가 바로 그 머슬메모리가 갈아치워지는 순간이기 때문에 이때부터 사실 트레이닝의 진정한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지옥훈련을 시도하고자 한다면, 뭐 어감만큼은 아니더라도 더 많은 횟수를 추구하고 더 무거운 도구를 추구하는 것으로 초기 단계의 실력은 확실히 상승시킬 수 있는데 이 시점에서는 어쨌든 빠르고 오래가는 사람이 무조건 유리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때 힘들게 해서, 팔다리힘이 빠지고 몸이 후들거리는 순간에 몸의 탄력과 회전, 전진관성을 이용해서 무기를 다루는 법을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되는 것도 중요하다. 이때는 힘으로 휘두를 수가 없기 때문에 싫어도 그렇게 된다. 그래서 머슬 메모리가 갈아치워지는 시간에 단지 동작뿐만 아니라 요령까지 함께 입력되고 거기에 체력까지 붙으면 스파링에서 일단 유리하게 된다. 우리 멤버는 이것을 통틀어 "병사의 검"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이 단계가 지나면, 즉 본질적으로 가진 게 기본기밖에 없는 상황에서 체력과 스피드로 우위를 차지하던 시점이 지나면 빠르게 한계에 부딪치게 된다. 여기서부터는 체력이 더 늘지도 않고 몸의 탄력 전진관성 회전을 이용하여 검을 쓰는 단계에 다다르면 이제 근육은 쓸모없고 어좁이 되기 시작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사실 더이상 뭐가 늘기는 쉽지 않다. 물론 고중량 검이나 몸에 쥬브를 설치하는 식으로 힘의 발생량을 늘리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것도 스파링에선 그다지 의미없다는 한계에 부딪치게 된다. 왜냐하면 여기서부터는 검리를 얼마나 더 몸에 붙이느냐, 정확히는 깨닫느냐의 수준으로 우위가 가려지기 때문이다. 이건 검리를 머리로 많이 알거나 기술을 많이 해본 것과는 다른 영역이다. 우리 멤버는 이 단계를 "장교의 검" 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리고 이 시점부터가 진정한 계단식 패턴이 생기게 된다. 늦던 빠르던 투자한 만큼 대각선으로 실력이 올라가면 그걸 동기삼아 열정을 가질 수 있지만 이 시점부터는 많이 투자해도 결과가 안나오는 상황이 생기기 때문에 이른바 과잉 투자의 딜레마에 빠져 투자를 중단하고 물러나는 경우가 생긴다. 즉 회의감을 느끼고 관두기 시작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시점부터가 사실 진짜 검술이 시작되는 단계다.

내가 검술이 스파르타 검술이 아닌 생활검술이 되기를 바라는 데에는 바로 여기에 근본적인 이유가 있는데 무술인이라면 응당 이래야한다는 관념에 사로잡혀 언제 전쟁에 나설지 모르는 크샤트리아 계급처럼 고농도 트레이닝에 자신을 바친다면 결국 계단식 발전단계에 접어들었을 때 이때는 사실 기약없는 슬럼프와도 비슷한 상황이기 때문에 지나친 정열을 쏟다 보면 이 시점에서 탈락하는 수밖에 없다.

계단식 발전단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물론 단순한 훈련에서 벗어나 이미지 스파링이나 응용연습, 검리를 배워 시도해보고 셰도우복싱에 해당하는 플러리쉬를 하는 것 등의 진보된 고차원적인 창의력 연습이지만 이 모든 것을 제쳐놓고라도 제일 중요한 것은 육체 정신에서 검술이 사라지지 않게 다잡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드트레이닝의 강박에 자신을 몰아넣을 필요 없이 십분 삼십분이라도 일상의 일부처럼 <그냥 한다>는 식으로 꾸준히 해나갈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만 도둑같이 오시는 깨달음의 그날이 오는 것이다. 게다가 이 시점에서는 스파르타식으로 기본이든 응용이든 사색이든 한다고 해도 정신만 아득해지지 깨달음이 더 빨리 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생각이 많으면 결과물이 산으로 간다.

그래서 나는 다른 건 몰라도 검술에서는 느긋해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 고도의 수련량이나 도구의 무게로 자랑을 삼는 것에 대해 자극받아 굳이 그렇게 할 필요까진 없다. 하고 싶다면 굳이 말리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오히려 그런 것으로 자기의 실력이 대단함이 입증된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결국 병사의 검이라는 틀을 깨지 못하고 병사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일 뿐이다. 장교의 검을 얻는다면 그러한 것은 단지 "많이 하네" "힘좋네" 라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tag :

Viewing all articles
Browse latest Browse all 1681

Trending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