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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아부 사이프의 전투의 예술(Kunst des Fech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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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 당파는 원래 2.4m였다?! 대봉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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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효신서는 여러 판본이 있습니다. 확인 가능은 최초의 기효신서는 18권본 통칭 왕세정본으로 1566년에 출판되었으니 1561년 신유년 대승 이후 5년만에 출판된 겁니다. 가장 최초본은 1560년 14권본이 있다고 하나 전해지지 않고요.

이 18권본을 보다 알게 된 것은 이때는 대봉과 장도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리고 당파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지 않습니다.

18권본 6권 비교편 등패 언급에 보면 장도를 하나씩 잡는다 라고 쓰여있어 장도가 언급되긴 하는데 등패수가 노다치를 쓸 수는 없으니 장요도, 장도, 단도는 이때는 그냥 요도의 별칭이라고 보면 됩니다. 삽화상으로도 확인되는 요도는 이후 기효신서 14권본(1584)년에 나타나는 손잡이가 기형적으로 짧은 요도와는 확연히 길이가 차이나기 때문에 그림에서 보이는건 장요도, 장도라고 특별히 언급하는 조금 긴 칼이라고 보면 될겁니다.

그리고 정기당집에 실린 검경 원문대로 18권본에서는 봉술과 당파가 섞여서 설명되는데, 이는 14권본에서 봉술과 당파를 분리해서 따로 서술한 것과는 차이가 나며 원래 봉술과 당파는 유대유의 검경에서 인용했다고 18권본에서는 정확하게 언급하네요.

凡朳杈棍俱要長一丈二尺盖短兵須長用庶可入長槍每人解首一把
무릇 팔차곤은 길이 1장2척으로 갖추어야 하니 단병기를 덮어 마땅히 길게 쓰고자 함이니 대체로 장창에 들어갈 수 있어...

다음 한자 해수를 뭐라고 해야할지 모르겠어서 모르겠지만 팔차곤이라고 함은, 팔朳이란 농기구 T자 머리를 가진 것이고, 차杈는 삼지창의 별칭이고 여기선 나무 목 변이 붙어있을 뿐이지요. 곤棍은 봉을 말하는건데 18권본에서는 삼지창 머리 바로 밑에 -자로 막대기가 달린 특이한 당파가 묘사되므로 팔차곤은 이런 종류의 당파를 말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기효신서부터 무예도보통지까지 중국-조선의 모든 사료에서 당파는 주척으로 재면 자루길이 1.6m이하의 짧은 물건인데, 사람에 비해 이상할 정도로 과도하게 길었습니다. 그런데 18권본, 초창기에는 당파가 총연장 2.4m로 길었다고 확실하게 이야기하고 있으며 그 목적도 단병기를 보조하기 위한 것임을 명백히 하고 있습니다.

보통 삽화는 변화된 현실을 반영하기보다는 기존의 내용을 가급적 그대로 반영하는데 특히 무기의 길이나 그런 것을 그렇게 하는 경향이 있더군요. 그러면 1584년본에서 당파의 길이가 줄어들었음에도 그냥 길게 그려놓은게 납득이 갑니다.

그리고 18권본 시점에선 대봉이라는 단어도 안보이고 그냥 곤棍이라고만 부르며, 검경은 실려 있으나 14권본 수족편 단기장용해가 훨씬 짧은 내용으로 검경 앞에 실려있고 그냥 곤을 배우는건 사서삼경을 읽는 것과 같고 모든 무기의 이치를 배우기 위해 좋다 라는 말 정도로 끝나있습니다. 즉 여기선 양쪽에 쇠를 두르고, 끝부분에 창날을 끼워넣은 그런 병기로써의 대봉은 없었습니다. 그냥 곤棍만 있었다는 소리지요. 그것도 훈련용으로만 쓴 겁니다.



다만 이제 기효신서나 정기당집의 봉술 훈련 삽화도 봉이 1.5m라기엔 너무 기니까 역시 길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검경 전에 단기장용설 파트에서 곤의 길이는 불과 6~7자에 불과하다 "長一棍不過六七尺" 라고 강조를 하고, 앞서 단기장용설 서문에서도 차,파,곤창,언월도,구겸은 모두 단병무기... 길이 7~8척이라 하니 아무리 길게 잡아줘도 168cm가 끝입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 대봉의 길이는 147cm를 못넘는 셈이네요.

결국 대봉이 남방에서 쓰이다가 북방 가서 길어진거라기보다는 훈련용의 곤을 북방 연병실기에서 실전용으로 길고 굵게 만들어서 길이 168cm, 칼날길이 6.6cm, 지름 4.2cm, 양쪽을 철로 보강한 실전병기로 만들었다가 다시 남방군 체계로 돌아가 14권본으로 정리하면서 기존 대봉의 사이즈만 도로 줄였다 라고 보면 되겠네요.

이게 기효신서를 계속 갱신하면서 기존 내용을 싹 갈아엎는게 아니라 옛것과 새것이 혼재되어 있으니 이런 다양한 문제가 벌어진다는 느낌입니다.

정리하면 1566년 시점에선
-장도(노다치)는 채용되지 않았다. 신유도법도 존재하지 않았음

-등패수의 요도가 1584년본 기효신서의 스펙보다 훨씬 길다. 장도 혹은 장요도라는 명칭으로 나타남.

-당파는 2.4m에 달했으며 당파라는 명칭과 팔차곤이라는 명칭이 혼용됨. 창을 제압하려는 의도가 명확함

-좌측에 등패, 우측에 입패 혹은 장패라 불리는 방어력 높은 목제 스큐툼이 배치됨

-당파는 그리 중시되지 않았고 화전을 쏜다는 말도 없음

-낭선이 최전방에서 당파가 하는 일까지 다 함

-대봉도 존재하지 않았으며 평범한 목제 곤만 있고 단기장용설의 언급을 보면 6~7척에 불과한 아주 짧은 봉이었음

-우리가 아는 굵고 단단하며 철로 보강하고 창날이 달린 대봉은 북방 연병실기에서 개발되어 처음 실전에 투입됨

-이후 최종정리본인 1584년본 기효신서에서 대봉이 다시 길이가 줄어들고 남방의 훈련용 겸 화병의 호신무기로 지정됨

-무예제보번역속집의 협도곤도 똑같은 처지였던 걸로 추정

-우리가 아는 원앙진이나 기효신서는 왜구와 전쟁할 때에는 전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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