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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아부 사이프의 전투의 예술(Kunst des Fech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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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효신서 장도 투로해설 纪效新书 长刀 套路 解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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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효신서 장도 투로(https://youtu.be/2vZeCuuRPTw)의 분해 및 해설 영상입니다. 纪效新书 长刀 套路 解说 影像.

기효신서 장도는 본래 왜구와 전쟁하던 당시에는 없었던 것으로, 1561년, 60갑자법으로 신유년(辛酉年)에 왜구를 대파하고 진중에서 노획한 일본 카게류 목록을 입수하면서 개발이 시작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1566년에 출간된 18권본 기효신서에도 수록되지 않았으나, 1571년 저술이 완료된 연병실기에서는 조총보병, 조총기병 모두에게 장도 혹은 쌍수장도라는 병기가 지급되었음이 확인되므로 1566~1571년 사이에 신유도법이 완성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후 1584년에 저술이 끝난 기효신서 최종본에서 마침내 장도술의 그림이 실리지만, 이때는 자세의 이름만 있고 다른 설명 없이 그림만 실려 있었습니다. 이후 임진왜란에서 조선을 돕기 위한 명나라 원군이 도착했고 참장 낙상지는 조선의 부족한 백병전 능력을 보완하기 위해 훈련도감을 설치하여 명나라 군대의 무술을 배울 것을 제안했습니다. 이에 따라 군관 한교를 필두로 하는 장교단이 명나라 군대에 무술을 배워 기록한 무예제보(1598년,선조 31년)에 마침내 명나라 군대의 장도 훈련 투로가 수록됩니다.

중국에는 군사 도법의 사료가 전혀 남지 않았으며 오직 정종유의 단도법선을 비롯한 민간도법만 남은 상황에서 최초의 원형인 군사 도법의 투로가 남은 것은 한중 양국에 있어서 매우 중대한 일입니다. 또 그것을 통해 단도법선, 수비록, 무예제보번역속집 왜검보, 무예보도통지 등의 사료를 취합하여 마침내 군사 도법의 정확한 실체를 복구하고, 투로의 해설까지 완료할 수 있었습니다.

장도는 날길이 104cm에 1척(21cm)을 황동으로 감싸 그것을 잡을 수 있게 했으며, 손잡이는 31.5cm입니다. 왜구의 노다치(野太刀)를 모방해 제작했으며, 왜구들이 노다치를 기민하게 쓰려고 칼날에 천이나 새끼줄을 감아 거기를 잡고 쓰던 것을 그대로 따라했습니다. 현재도 히고 신카게류는 거대한 노다치에 천을 감아 그곳을 잡고 시연하는 행사를 가끔 벌이고 있습니다.

조선에서는 장도가 오래 사용된 것 같지 않으며, 이미 1610년에 편찬된 무예제보번역속집(武藝諸譜飜譯續集) 왜검보를 보면 대봉투로와 장도의 용어와 체계 안에 일본군의 도법을 수록했지만 평범한 일본도/환도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후 인조6년에 어영청등록에 처음 나타나는 제독검, 본국검도 평범한 환도를 사용하는 검술이므로 조선에서는 장도가 일찍 퇴출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선에서 장도 도법은 그대로 남아 효종 대 병조판서 김좌명이 "무예에 능한 자들"을 불러모아 기효신서 조선본을 간행하면서 거대한 장도에 맞게 그려진 삽화들을 환도에 맞게 수정하는 작업을 수행했고, 이것이 이후 이어져 무예도보통지 쌍수도가 됩니다.

장도 도법은 내려베기, 올려베기, 찌르기로만 구성된 간단한 도법이며, 내려베기와 올려베기가 공격이면서 방어가 되고 한 동작으로 연결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또한 현대 검도의 타돌과 거의 같은 진전살적세를 따로 넣어 큰 동작의 문제점을 처리하고 간결한 기법을 추가했으며, 일본인들이 흔히 사용하는 소에테(添え手) 즉 칼등에 손을 대어 강하게 막아내거나 올려써는 기법을 향상방적이라는 이름으로 도입했습니다. 또한 카게류의 1번, 2번형인 엔삐, 엔카이를 3번째 투로, 4번째 투로에 삽입하여 원전을 보존하려는 노력도 보여집니다.

이처럼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고 공방이 연결되도록 만들어진 장도 도법이지만, 동작이 너무 커서 중국과 조선에서는 검술과 융합하여 보완을 시도하게 됩니다.

중국에서는 무술가 정종유가 절강성의 유운봉, 호주의 곽오도에게 배워 눌러 써는 삭(削)기법을 추가한 단도법선으로 정리하여 경여잉기라는 책으로 출판했고, 이 단도법이 중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어 현대에도 묘도라는 이름으로 분화 발전되어 있습니다. 뒤이어 명말 청초의 창술가 오수는 수비록을 출판하며 어양검선의 쌍수검법을 도입해 창을 타고 미끄러져 들어가는 세(洗) 기법을 추가했으며, 이 기법은 왕오공의 태극도법에서 더 세밀하게 분화되지만 이후로는 자료가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조선에서는 올려베기와 내려베기만 있는 장도에 더해 임진왜란 당시 참장 낙상지가 가르쳐줬다는 제독검을 제식화시키고 쌍수검법인 조선세법과 신유도법을 융합시켜 독자적으로 본국검을 창설하기도 했으나, 지속적으로 왜검, 예도 등의 다른 검술을 도입하려 시도했음에도 결국 용검, 평검으로 불린 신유도법과 제독검만이 끝까지 살아남았습니다.

조선의 핵심 교범인 기효신서의 공식 도법이라는 점이 가장 큰 이유였겠으나, 편하고 배우기 쉽다는 점에서 최후까지 살아남은 것이라고 추정됩니다. 그리고 직접 복구하고 가용 가능한 모든 사료를 종합하여 재조정을 거듭한 결과 나름대로의 한계는 있지만 실전적이고 배우기 쉬우며 위력적인 도법이었기 때문이었기 때문임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0:27 첫번째 파트第一路
0:54 장도의 발도법 長刀之拔刀法 / 1:27 단도법선에 나타나는 또다른 발도법 单刀法选上的其他拔刀方法 / 1:58 지검대적세 持劒對賊勢 / 2:10 향좌-향우방적세 向左防賊勢/向右防賊勢 / 3:01 향상방적세-향전격적세 向上防賊勢 → 向前擊賊勢 / 3:26 향전격적세 向前擊賊勢 / 4:07 초퇴방적세 初退防賊勢

4:42 두번째 파트第二路
5:19 진전살적세 進前殺賊勢 / 5:43 향상방적세-진전살적세 向上防賊勢 → 進前殺賊勢 / 6:51 지검진좌세-식검사적세-섬검퇴좌세 持劒進坐勢→拭劒伺賊勢→閃劒退坐勢 / 7:23 휘검향적세揮劒向賊勢 / 7:50 휘검향적세-진전살적세 揮劒向賊勢 → 進前殺賊勢 / 8:06 일자一刺 / 8:20 제퇴방적세 再退防賊勢

8:59 세번째 파트第三路
9:30 왼손으로 잡아 둘러 앞을 향하여 오른손으로 다시 잡고, 以左手持劒向前, 以右手更把, / 10:06 카게류 엔삐-삼퇴방적세 陰流 猿飛-三退防賊勢

10:48 네번째 파트 第四路
11:39 카게류 엔카이 陰流 猿廻 / 11:58 장검고용세 藏劒賈勇勢
12:21 납도법納刀法-수도입초세收刀入鞘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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