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antcast
Channel: 아부 사이프의 전투의 예술(Kunst des Fechten)
Viewing all articles
Browse latest Browse all 1681

찌르기 무기와 패리&리포스트

$
0
0
나는 이전부터 찌르는 무기끼리는 패리&리포스트 방식이 더욱 안전하고 알맞는 검리라고 생각해 왔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찌르는 무기가 서로 대치할 경우 보통 상대를 찔러야 하므로 서로 = 형상으로 대치하기 마련이다. 르네상스 검술의 원리대로 바인딩하면서 타고 들어가 찌를 것 같으면 확실하게 X자로 교차되어야만 바인딩이 풀리지 않는데, 찌르기 무기, 즉 장창이나 레이피어는 이렇게 크게 교차시키면 칼끝이 상대의 몸이 아니라 하늘 내지는 땅을 향하기 때문에 상대를 견제할 수 없을 뿐더러 한번에 타고 들어가 찌르기는 힘들어진다.

그래서 상대를 견제하면서도 바인딩하려면 수평에 가깝게 교차시킬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하면 일시적으로 바인딩이 되어도 칼이 슥 미끄러지거나, 상대가 살짝만 칼끝을 들거나 내리기만 해도 칼이 교차되지 못하고 풀려버린다. 실제로 해보면 상대가 아무런 짓도 안했는데도 칼이 쓱 미끄러지면서 접촉이 풀려버린다.

이것은 엄청나게 위험한 상황이다. 상대 칼을 밀어내면서 찌르려고 하다가 슥 미끄러져서 서로 동시에 찔러서 둘다 죽는 상황이 생기기 십상이다. 불확실 투성이다. 내 안전을 확실하게 보장해줄 수 없으면 그건 검술로써의 가치도 없고 검술이라 부를 수도 없다. 서로 동시에 휘둘러서 먼저 치는 HEMA토너먼트의 행동이나 찬바라 같은 것을 검술로 보지 않는 이유이다.

그래서 레이피어 한자루만 사용하는 매뉴얼을 보면 거의 대부분 바인딩하면서 찌른다기보다는 거의 상대와 동시에 찌르면서 스텝을 이용해 상대의 칼이 날아오는 궤도를 피해버리는 방식이다.

이러면 동시에 찔러도 나는 살고 상대는 죽기는 하지만, 상대의 의도를 바인딩을 통해 느낌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상대의 공격을 쳐내면서 동시에 공격한다는 르네상스 검술의 원리와 맞는 것도 아니다. 바인딩을 하더라도 거의 힐트, 가드로 바인딩하는 정도이다.

당대의 롱소드나 사이드소드 마스터들은 레이피어를 별로 좋게 보지 않았는데 내가 보기엔 이런 문제점 탓이었을거라 생각된다. 베기와 찌르기를 균형있게 수행함으로써 르네상스 검술 원리대로 자신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무기가 아닌, 단지 멀리서 찌르기 위해 베기성능을 포기하고 송곳에 가까운 칼날, 1.5m에 이르는 것이 있을 만큼 기예보다는 기계의 길이에 의지하는, 그리고 상당히 위험하기 짝이 없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결국 자신의 안전을 보장하려면 X자로 교차하여 바인딩하는 수밖에 달리 답이 없다. 그런데 베는 무기는 교차 바인딩하고 택할 수 있는 옵션이 매우 많으나, 찌르기만 올인한 무기는 교차 바인딩하면 칼끝이 땅이나 하늘을 향하므로 결국 상대에게 칼끝을 겨누는 타임 딜레이가 생겨버린다. 만일 상대가 내 얼굴을 향해 찔렀다면 나는 어쩔 수 없이 상대의 검을 쳐내야 하는데 상대의 몸이나 얼굴에 칼을 겨누면 칼이 서로 수평에 가까워지므로 실패확률이 아주 높아진다. 결국 칼끝을 하늘로 향하면서 쳐내야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 그런데 이건 말하자면 <방어> 하는 행동이다.



결국 확실하게 바인딩하고 검을 교차시키고 그럼으로써 밀어내거나 쳐내려고 한다면 <방어>하는 셈이 되며, 다시 칼끝을 상대에게 겨누는 타임 딜레이가 생기므로 방어와 공격이 구분되는 형태로 된다. 결국 확실하게 안전하게 들어가고자 한다면 패리&리포스트 형태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창술 시스템을 보아도 알 수 있는데 타국의 창술 시스템도 거의 패리&리포스트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창도 내가 말한 특성을 그대로 가지기 때문이다. 길고 찌르기만 허용되는 물건이다보니 바인딩하면서 동시에 상대 무기를 밀어내면서 찌르기는 실패확률이 높다. 레이피어나 스몰소드와 같이 바인딩이 쉽게 풀려버리기 때문이다. 결국 확실한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당장 상대를 잡지 못하더라도 확실하게 X자로 바인딩해서 상대의 공격을 쳐내거나 밀어낸 다음 공격에 나서는 것이 낫다. 결국 찌르기밖에 못하는 무기에게는 그에 걸맞는 싸움법이 존재하며 베기 옵션을 제공할 수 없다면 패리&리포스트만한 답은 없다는 것이 나의 오래된 생각이다.

tag :

Viewing all articles
Browse latest Browse all 1681

Trending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