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전부터 느껴 왔던 것 중 하나는 아무리 철로 만든 페더슈베르트라고 하더라도 분명히 실제 무기와 다르며, 그에 따라 리히테나워 검리가 완전히 적용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는 다른 수많은 무술, 무도에서도 겪는 문제인데, 죽도나 목검 같은 <도구>가 실제 무기와 상이한 점 때문에 이런 장비를 이용해 승패를 겨루는 대련을 하게 되면 당연히 진검 검리는 무거운 무기류 전투에서 얻어진 노하우이므로 가볍거나 푹신하거나 해서 특성이 다른 도구 스파링에서는 비효율적인 측면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점점 대련 승리를 위해 그 도구에 맞는 가장 효율적인 방식을 찾아가게 되는 현상이다.
페더슈베르트는 철로 만들어지긴 했지만 결국 안전을 위한 도구이다. 르네상스 시대 무술학교에서는 이 페더슈베르트를 장갑이나 호구, 헤드기어를 전혀 착용하지 않고 하는 기술연습이나 대련에 사용했는데, 언뜻 철검을 무호구로 사용하다니 죽고 싶어 환장했다고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실제로는 몇가지 특성에 의해 오히려 다른 도구보다 안전해진다.


1. 칼날의 폭이 아주 좁고 가벼워 실수로 타격해도 중상 우려가 적다. 가령 본인은 무릎을 풀스윙으로 맞았지만 통증은 3일 이상 가지 않았고 지난주에도 손가락을 친 경우가 생겼지만 부상이나 통증이 전혀 없었다. 물론 컨트롤을 당연히 전제해야만 발휘되는 특성.
2. 날개처럼 펴진 리캇소에 의해 크로스가드의 취약점인 손가락 파괴를 방지한다. 이게 없으면 제대로 상대의 운동에너지를 차단하지 않고 기술을 쓰는 실수를 저질렀을 때 크로스가드를 타고 넘어오는 칼날에 낑겨서 손가락이 부러진다.
3. 여기에 손잡이까지 길어서 슨도메나 컨트롤하기가 아주 편하다. 칼날의 폭이 좁고 가벼운 것과 합쳐져 놀라운 효과를 지닌다.
이런 점들 때문에 심리적으로 <남을 다치지 않게 할 수 있다> 는 안정감을 가질 수 있으며, 이에 따라 아무런 방호구를 하지 않아도 충분히 진검 검리를 적용하면서도 안전하게 훈련할 수 있게 된다. 사실 옛날 사람들이 진검 실전이 절박했던 15세기부터 이런 걸 만든 이유가 확고한 것은 평복 훈련을 해보면 느껴지는데, 진검에서 날만 죽인 도구는 기본적으로 상대를 파괴하는 데에 중점이 맞춰진 물건들이라 롱소드 진검들을 보면 컨트롤은 편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칼날에 실리는 질량이 상당하고, 여기에 손잡이까지 짧아서 조금만 실수해도 손가락이 박살나기 딱 좋다. 살인 무기로써는 최적이지만 상대를 배려해야 하는 도구로써는 안좋다.
그렇다 보니 아무리 상대가 잘하고 내가 자신이 있어도 <단 한순간의 실수> 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훈련이나 스파링에서 심리적인 저항감을 갖게 되고, 이는 조금씩 느려지고 소극적이 되는 결과로 된다. 결과적으로 진검에 가까운 도구가 오히려 훈련에서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페더와 같은 도구가 개발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결국 페더는 안전을 위한 도구이기 때문에 단순히 진검 검리를 훈련하기 위한 도구로 써야지, 그렇지 않고 보호구를 쓰고 풀스파링에 임하게 되면 결국 페더의 도구적 특성이 상당히 적용될 수밖에 없다. 더 빠르고 순간적으로 멈춰지며 전광석화같이 움직이기 때문에 리히테나워 검리가 교과서적으로 적용되기가 힘들어진다.
실제로 스파링을 해보면 워소드로 스파링할 경우 리히테나워 검리가 매우 정확하게 적용이 된다. 정자세를 취하지 않으면 애초에 속도도 질량도 실리지가 않기 때문에 좋든 싫든 바른칼, 진검칼로 써지지 않을 수가 없고, 약간의 딜레이가 생기기 때문에 상대의 움직임이나 의도를 파악하기 쉽다. 한마디로 말해서 검술서에서 시키는 대로만 하면 싸움이 되는데,
페더는 정자세 안 취해도 얼마든지 빠르게 칼이 나가며 손잡이가 길고 칼날이 가벼워 딜레이 없는 급가속 스피드가 나오고 따라서 개칼친다고 불이익이 생기지도 않는다. 그외 다양한 특성들이 있기 때문에 검술서에 따른 검리대로 싸우면 뭔가의 위화감이 느껴지고 점점 이건 아니지 싶은 지경까지 가게 된다.
더군다나 오히려 더 다치는 현상이 생기기도 하는데 페더를 급가속시키면 스피드가 붙어서 훨씬 아프다. 개인적으로 죽도검도하고 피멍 든 사람들을 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한 적이 있었으나 페더도 남말할 처지가 아니다. 보호구를 착용하고 더 다치게 되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재미있는 건 이런 악영향들이 무호구 훈련이나 스파링을 하게 되면 상당부분 사라진다는 것이다. 원래 상대를 다치지 않게 하려는 심리적 저항을 전제로 만들어진 물건이니만큼 상대를 다치지 않게 조심했을 때에 비로소 진검 검리대로 안전하게 훈련하기 위한 도구 본연의 특성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즉 내가 내린 결론은, 페더는 무호구 카운터 드릴이나 스파링에 사용(옛날 사람들이 그래 왔듯이) 해야 하고, 진검형 블런트는 개인훈련과 마스크 장갑 스파링에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진검술의 검리가 그대로 적용되는 훈련과 스파링이 가능해지고 그래야만 리히테나워 검리가 제대로임을 알 수 있다고 본다. 이는 내 안에서는 거의 확신이다.
HEMA토너먼트 종자들은 늘 보여지는 대로 안테나를 방불케 하는 페더를 가지고 전신호구를 쓰고 스파링을 하는데, 그러면 위에서 쓴 요소들 탓에 리히테나워 검리를 절대로 활용할 수 없다. 그들 중에서는 지금의 원거리 패리&리포스트화를 오히려 제대로 검리대로 가는 길이라고 인식하는 종자들까지 등장했다고 하는데, 도구에 맞춰서 인식까지 변하는 테크트리에 접어든 것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HEMA 스파링기어들은 이미 진검형 블런트에서도 얼마든지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만큼 진화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제 알비온 리히테나워 같은 진검형 블런트를 활용해야만 엇나감을 멈추고 리히테나워 기예를 활용하는 첫 걸음을 비로소 내딛을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