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놔... 존나 시끄럽네...'
아까부터 뇌졸증이 우려될 만큼 얼굴이 시뻘개져서 장광설을 토해내는 진보당 대의원 양반의 목소리는 이제 질리다 못해 그 체력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이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대체적으로 내 편을 들어주고 있으나, 민주당 의원들은 진보당만큼은 아니더라도 서로 순번 정해서 나를 극딜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다.
흑호방주가 재패니즈 고어망가를 방불케 하는 놀라운 꼴로 죽어간 장면은, 놀랍게도 설치된 카메라를 통해 대화내용에 이르기까지 완전 라이브로 방송된 모양이었다. 카메라 기사는 내가 들어올때 콜트 네이비에 맞고 죽었지만 카메라는 꺼지지도 않고 그대로 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흑호방주 사망 이후 나는 그의 노트북을 챙기고 김석원과 함께 진보계열 자경단들의 밀려드는 공세를 뚫고 탈출했다. 우리 결사대는 절반 이하로 줄어 있었고 안전 가옥에 도착하여 몸을 숨긴 후 흑호방주의 노트북의 자료를 정리했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 내용이 생각이 난다.
고화질의 인체 예술 사진이나 납품용 스너프 필름의 1차 촬영분 등은 그냥 그러려니 했다. 놀라운 것은 고객 명단이나 지역 공장들의 위치, 관련자나 업무 방식 등이 매우 상세히 정리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마치 누군가에게 보여주려고 했던 것처럼. 그리고 수많은 3GP확장자의 동영상 파일(그 내용은 굳이 말하지 않는다)의 마지막에 있던 영상의 내용은 나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그는 의자에 앉아서 다리를 꼬고 카메라를 보고 있었는데, 영상 속에서 종이로 출력한 리스트를 뒤적거리면서 문영화의 이름을 말해주고는 진심으로 사죄한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진짜 이름을 말해주었다. 그는 필리핀 태생의 화교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의 자세한 인생역정을 말해주었다.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그는 감정이란 걸 이해하지 못했던 자였다. 그러던 와중 자신의 여동생이 버스 바퀴에 말려들어가 곤죽이 된 보곤 괴이한 느낌에 휩싸였다고 한다. 그는 살면서 주변인들에게 연기를 했다. 슬퍼하고 기뻐하는 듯한 연기를. 그러나 그런 자신에 대해 남들에게 거짓말을 하며 살아간다는 괴리감에 좌절하던 도중 여동생의 죽음을 보고 감정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다고 한다. 그렇다면 자기 자신도 진실된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거짓말 없이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졌다고 했다.
그는 결국 집을 나와 뒷골목으로 들어갔으며 범죄 생활을 시작했다. 누구보다도 잔인하면서도 시키는 대로 아무런 의문도, 엉뚱한 생각도 없이 적극적으로 순수하게 일하는 그는 곧 리더의 비밀 거래선에 투입되었다. 가장 은밀하고 가장 사악한 악마의 사업을 위해 중국으로 출장을 나갔다. 거기서 그는 흑호라 불리는, 중국 정부에서 인정해주지 않는 한족의 두번째 자식들이 범죄에 빠진 것을 보면서 그들을 위로하면서 자기 사람으로 끌어들였다. 어차피 그는 감정을 연기하는 데에는 이골이 나있었으니, 나라면 남사스러워서 못할 연기도 잘 할수 있었던 모양이다.
푸대접 받고 괴롭게 살아왔던 흑호들은 곧 그를 따르기 시작했고 그는 업계의 10위권 안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세계업계는 황인종보다는 백인종 서양인을 좀 더 선호했고 중국인을 주요 상품으로 내세운 그는 결국 성장세가 둔화되었다. 그리고 문제는 중국 내부의 권력 투쟁으로 인해 그를 후원하면서 뒤를 봐주던 관료가 숙청당했고 뒤이어 보시라이가 충칭시 서기관으로 오면서 사업이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그래서 한국으로 들어와 새로운 사업을 차렸고, 상품 차별화를 위해 인체 예술로 시장에 진입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한다. 여기까지 설명하는 그의 표정은 그냥 그러려니 하는 표정이었다.
뒤이어 나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냥 떠나 새로운 곳에서 사업을 차릴 예정이었다고 한다. 어차피 안산 공장은 별로 중요한 곳도 아니었으므로,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가슴 속에서 나에 대한 집착이 치밀어올랐고 처음에는 증오인지 뭔지 갈피를 잡지 못했으나 자신의 감정이라는 것이 이토록 끓어오른 적이 없었다면서 모든 것을 검증하기 위한 최고의 실험장을 준비했다고 했다. 어설픈 암살 시도로는 택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랍신다.
증오라면, 전습대가 망하고 내가 죽으면서 파멸하는 것을 통해 카타르시스와 함께 감정의 봉인이 풀릴 것이다.
집착이라면 허무함에 빠질 것이고, 사랑이라면 절망에 빠질 것이고, 어찌되었던 이 감정의 격류가 봉인의 문을 때려부수어 진정한 자신을 마주하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에, 굳이 결과가 어찌되던 자기는 상관없다. 자신이 평생 찾아 헤메던 진실된 마음이라는 걸 찾아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라는 것이 비디오의 내용이었다.
마지막 한 마디는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흑호방주는 착잡한 표정을 처음으로 지으면서, 한숨을 길게 쉬고는 말했다.
"너에게는 모든 것을 다 이야기하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순간, 놀람 교향곡의 깜짝 파트마냥 귀를 후려치는 고성에 눈이 떠졌다.
"당신은 범죄자야 범죄자! 매국노라고! 그런데도 의원들을 앞에 두고 잠이나 쳐자?!"
소리 나는 쪽에는 아까보다 더 뻘개진 진보당 대의원의 면상이 자리하고 있었다. 손가락질을 하면서 진심으로 노발대발하는 그자의 얼굴을 보니 바늘로 찌르면 피분수가 톡하고 터질 듯한 수준으로 시뻘개져 있다. 진심 혈압이 궁금해지면서 목의 와이셔츠를 조금 잡아당겼다. 내가 입은 양복은 와이셔츠가 차이나 칼라로 된 19세기 후반 스타일이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좀 답답함이 느껴졌다. 왜 와이셔츠의 칼라가 요즘처럼 접힌 스타일로 바뀌었는지 알 만 하다.
"어서 말해! 흑호방주랑 짜고 음모를 꾸민걸 어서 말하라고!!"
사람이 살면서 자기가 결정적으로 실수하고 잘못한 것이 드러나면 인정하기 싫은 법이고, 그런 상황에서 자주 선택하는 것이 바로 인지부조화이다. 이제는 숫제 우리가 흑호방주와 짜고 진보세력을 파멸시키기 위해 음모를 꾸몄으며, 그 뒤에는 다까끼 마사오 딸내미 정권의 추악한 음모가 숨어있다는 시나리오가 뇌내 완성이 된 모양이다.
이런 논리에 하나하나 반박한다는 것은 이미 시작부터 패배한 말싸움이다.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끌려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것을 통해 주도권을 잡고 해나가는 것이 말싸움의 기본인데, 아무튼 나는 이런 상황에서의 탁월한 비법을 사담 후세인을 통해 전수받은 적이 있다.
이젠 뭔가 말해야 할 시점이다. 나는 일부러 팔을 크게 털어주면서 자세를 고쳐앉는 모션을 취했다. 그런 나를 본 그 성질내던 진보당 의원의 얼굴모양새가 '옳거니 이놈, 이제 나왔구나, 박살을 내줘야지' 라는 투로 변하면서 정색하는데, 나는 그걸 슥 스쳐보면서 팔을 책상 위에 올리고 허리를 앞으로 조금 숙였다.
"이 청문회가 원하는 게 뭡니까?"
그리고는 피꺼솟 진보당 대의원을 엄지로 슥 가리켰다.
"저분은 지금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진보당 학살을 했다는데 그게 사실입니까?"
그러면서 새누리당 의원들쪽을 둘러보았다. 새누리당 의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 진보당 대의원 쪽으로 쏠리는 걸 보면서 나도 그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 진보당 대의원은 말문이 턱 막힌 듯 했다. 당연하지! 왜냐면 그는 아직 대통령과 집권여당이 그랬다고 말한 적이 없었으니까. 하지도 않은 말을 했다고 하는데 어이가 털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내가 언제 그랬어! 이게 아주 돌았구만?! 어?"
"아아! 품위를 지키세요. 국회의원이 길바닥 시위꾼처럼 행동해서야 되겠습니까? ("뭐 이 미친 새끼야?!") 그럼 현 정부와 집권당이 이번 사태를 꾸민 게 아니라는 거네요?"
"당연히 책임져야지! 책임이 있지!"
"그러니까 음모는 없다?"
"그러니까 조사를 해야지! 다 나올거야 이 XX야! 친일 매국노 #%@^%&^#...."
나는 다시 의원들을 슥 둘러보면서 피꺼솟 의원을 향해 엄지손가락으로 슥 가리키면서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음모가 있다는데요?"
새누리당 의원들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가운데 필기구가 나에게 투척되었고 투척의 주인공인 진보당 의원이 책상을 뛰어넘으면서 나에게 달려들었으나 보안요원에게 저지되었다. 그의 입에서는 그네꼬 개갈보 XX맛이 그리도 좋더냐 등의 다양한 발언이 튀어나왔고 그의 면상은 인간에서 귀신으로 페이스리프트 모델 출시가 임박한 지경이었으므로, 국회의장은 급히 청문회의 종료를 선언했다.
그런 그를 향해 나는 왼쪽 눈썹을 한번 올렸다 내리면서 입가에 미소를 지어주자, 피꺼솟 의원의 몸속에서 결정적인 뭔가가 끊어졌는지 그는 머리를 부여잡고 눈이 뒤집히면서 쓰러졌다. 허허허 저놈 허허허
경찰들에게 붙들린 채로 의원들끼리의 팀배틀이 벌어지기 시작한 청문회장을 나오면서 생각한 바, 19세기 후반 양복을 입은 것도 그렇거니와 말도 희한하게 하는 것을 남들이 객관적으로 본다면 장난치는 거 아닌가 생각하기 딱 좋다. 그러나 나는 이미 흑호방주 잡으러 가면서 죽었다고 생각한 몸이었고 이렇게 된 이상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다 할 생각이었다. 남들이 어찌 보건간에 최후까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내 식대로 못하면 죽어서도 평생 후회할 것임에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철저하게 내 할말을 다 하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정권은 이번 사태의 책임을 면피하기 위해서 나를 희생양으로 삼을 것이니 살아남을 방도가 없다. 내가 직간접적으로 죽인 사람만 천명이 훌쩍 넘어가는데 뭔 수로 풀려나겠어. 오직 사담 후세인 재판을 롤모델로 삼아 꼿꼿하게 나가는 것이 내 유일한 목적일 뿐이다.
그리고, 당연히 안산 사변 청문회는 오늘로 끝이 아니다.
그나저나 내일 구치소 아침에는 계란이 나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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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습대 89화 인실좇(2)
언젠가 씁니다.
tag : 팬픽, 다크판타지, 전습대
아까부터 뇌졸증이 우려될 만큼 얼굴이 시뻘개져서 장광설을 토해내는 진보당 대의원 양반의 목소리는 이제 질리다 못해 그 체력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이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대체적으로 내 편을 들어주고 있으나, 민주당 의원들은 진보당만큼은 아니더라도 서로 순번 정해서 나를 극딜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다.
흑호방주가 재패니즈 고어망가를 방불케 하는 놀라운 꼴로 죽어간 장면은, 놀랍게도 설치된 카메라를 통해 대화내용에 이르기까지 완전 라이브로 방송된 모양이었다. 카메라 기사는 내가 들어올때 콜트 네이비에 맞고 죽었지만 카메라는 꺼지지도 않고 그대로 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흑호방주 사망 이후 나는 그의 노트북을 챙기고 김석원과 함께 진보계열 자경단들의 밀려드는 공세를 뚫고 탈출했다. 우리 결사대는 절반 이하로 줄어 있었고 안전 가옥에 도착하여 몸을 숨긴 후 흑호방주의 노트북의 자료를 정리했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 내용이 생각이 난다.
고화질의 인체 예술 사진이나 납품용 스너프 필름의 1차 촬영분 등은 그냥 그러려니 했다. 놀라운 것은 고객 명단이나 지역 공장들의 위치, 관련자나 업무 방식 등이 매우 상세히 정리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마치 누군가에게 보여주려고 했던 것처럼. 그리고 수많은 3GP확장자의 동영상 파일(그 내용은 굳이 말하지 않는다)의 마지막에 있던 영상의 내용은 나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그는 의자에 앉아서 다리를 꼬고 카메라를 보고 있었는데, 영상 속에서 종이로 출력한 리스트를 뒤적거리면서 문영화의 이름을 말해주고는 진심으로 사죄한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진짜 이름을 말해주었다. 그는 필리핀 태생의 화교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의 자세한 인생역정을 말해주었다.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그는 감정이란 걸 이해하지 못했던 자였다. 그러던 와중 자신의 여동생이 버스 바퀴에 말려들어가 곤죽이 된 보곤 괴이한 느낌에 휩싸였다고 한다. 그는 살면서 주변인들에게 연기를 했다. 슬퍼하고 기뻐하는 듯한 연기를. 그러나 그런 자신에 대해 남들에게 거짓말을 하며 살아간다는 괴리감에 좌절하던 도중 여동생의 죽음을 보고 감정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다고 한다. 그렇다면 자기 자신도 진실된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거짓말 없이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졌다고 했다.
그는 결국 집을 나와 뒷골목으로 들어갔으며 범죄 생활을 시작했다. 누구보다도 잔인하면서도 시키는 대로 아무런 의문도, 엉뚱한 생각도 없이 적극적으로 순수하게 일하는 그는 곧 리더의 비밀 거래선에 투입되었다. 가장 은밀하고 가장 사악한 악마의 사업을 위해 중국으로 출장을 나갔다. 거기서 그는 흑호라 불리는, 중국 정부에서 인정해주지 않는 한족의 두번째 자식들이 범죄에 빠진 것을 보면서 그들을 위로하면서 자기 사람으로 끌어들였다. 어차피 그는 감정을 연기하는 데에는 이골이 나있었으니, 나라면 남사스러워서 못할 연기도 잘 할수 있었던 모양이다.
푸대접 받고 괴롭게 살아왔던 흑호들은 곧 그를 따르기 시작했고 그는 업계의 10위권 안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세계업계는 황인종보다는 백인종 서양인을 좀 더 선호했고 중국인을 주요 상품으로 내세운 그는 결국 성장세가 둔화되었다. 그리고 문제는 중국 내부의 권력 투쟁으로 인해 그를 후원하면서 뒤를 봐주던 관료가 숙청당했고 뒤이어 보시라이가 충칭시 서기관으로 오면서 사업이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그래서 한국으로 들어와 새로운 사업을 차렸고, 상품 차별화를 위해 인체 예술로 시장에 진입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한다. 여기까지 설명하는 그의 표정은 그냥 그러려니 하는 표정이었다.
뒤이어 나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냥 떠나 새로운 곳에서 사업을 차릴 예정이었다고 한다. 어차피 안산 공장은 별로 중요한 곳도 아니었으므로,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가슴 속에서 나에 대한 집착이 치밀어올랐고 처음에는 증오인지 뭔지 갈피를 잡지 못했으나 자신의 감정이라는 것이 이토록 끓어오른 적이 없었다면서 모든 것을 검증하기 위한 최고의 실험장을 준비했다고 했다. 어설픈 암살 시도로는 택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랍신다.
증오라면, 전습대가 망하고 내가 죽으면서 파멸하는 것을 통해 카타르시스와 함께 감정의 봉인이 풀릴 것이다.
집착이라면 허무함에 빠질 것이고, 사랑이라면 절망에 빠질 것이고, 어찌되었던 이 감정의 격류가 봉인의 문을 때려부수어 진정한 자신을 마주하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에, 굳이 결과가 어찌되던 자기는 상관없다. 자신이 평생 찾아 헤메던 진실된 마음이라는 걸 찾아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라는 것이 비디오의 내용이었다.
마지막 한 마디는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흑호방주는 착잡한 표정을 처음으로 지으면서, 한숨을 길게 쉬고는 말했다.
"너에게는 모든 것을 다 이야기하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순간, 놀람 교향곡의 깜짝 파트마냥 귀를 후려치는 고성에 눈이 떠졌다.
"당신은 범죄자야 범죄자! 매국노라고! 그런데도 의원들을 앞에 두고 잠이나 쳐자?!"
소리 나는 쪽에는 아까보다 더 뻘개진 진보당 대의원의 면상이 자리하고 있었다. 손가락질을 하면서 진심으로 노발대발하는 그자의 얼굴을 보니 바늘로 찌르면 피분수가 톡하고 터질 듯한 수준으로 시뻘개져 있다. 진심 혈압이 궁금해지면서 목의 와이셔츠를 조금 잡아당겼다. 내가 입은 양복은 와이셔츠가 차이나 칼라로 된 19세기 후반 스타일이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좀 답답함이 느껴졌다. 왜 와이셔츠의 칼라가 요즘처럼 접힌 스타일로 바뀌었는지 알 만 하다.
"어서 말해! 흑호방주랑 짜고 음모를 꾸민걸 어서 말하라고!!"
사람이 살면서 자기가 결정적으로 실수하고 잘못한 것이 드러나면 인정하기 싫은 법이고, 그런 상황에서 자주 선택하는 것이 바로 인지부조화이다. 이제는 숫제 우리가 흑호방주와 짜고 진보세력을 파멸시키기 위해 음모를 꾸몄으며, 그 뒤에는 다까끼 마사오 딸내미 정권의 추악한 음모가 숨어있다는 시나리오가 뇌내 완성이 된 모양이다.
이런 논리에 하나하나 반박한다는 것은 이미 시작부터 패배한 말싸움이다.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끌려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것을 통해 주도권을 잡고 해나가는 것이 말싸움의 기본인데, 아무튼 나는 이런 상황에서의 탁월한 비법을 사담 후세인을 통해 전수받은 적이 있다.
이젠 뭔가 말해야 할 시점이다. 나는 일부러 팔을 크게 털어주면서 자세를 고쳐앉는 모션을 취했다. 그런 나를 본 그 성질내던 진보당 의원의 얼굴모양새가 '옳거니 이놈, 이제 나왔구나, 박살을 내줘야지' 라는 투로 변하면서 정색하는데, 나는 그걸 슥 스쳐보면서 팔을 책상 위에 올리고 허리를 앞으로 조금 숙였다.
"이 청문회가 원하는 게 뭡니까?"
그리고는 피꺼솟 진보당 대의원을 엄지로 슥 가리켰다.
"저분은 지금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진보당 학살을 했다는데 그게 사실입니까?"
그러면서 새누리당 의원들쪽을 둘러보았다. 새누리당 의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 진보당 대의원 쪽으로 쏠리는 걸 보면서 나도 그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 진보당 대의원은 말문이 턱 막힌 듯 했다. 당연하지! 왜냐면 그는 아직 대통령과 집권여당이 그랬다고 말한 적이 없었으니까. 하지도 않은 말을 했다고 하는데 어이가 털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내가 언제 그랬어! 이게 아주 돌았구만?! 어?"
"아아! 품위를 지키세요. 국회의원이 길바닥 시위꾼처럼 행동해서야 되겠습니까? ("뭐 이 미친 새끼야?!") 그럼 현 정부와 집권당이 이번 사태를 꾸민 게 아니라는 거네요?"
"당연히 책임져야지! 책임이 있지!"
"그러니까 음모는 없다?"
"그러니까 조사를 해야지! 다 나올거야 이 XX야! 친일 매국노 #%@^%&^#...."
나는 다시 의원들을 슥 둘러보면서 피꺼솟 의원을 향해 엄지손가락으로 슥 가리키면서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음모가 있다는데요?"
새누리당 의원들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가운데 필기구가 나에게 투척되었고 투척의 주인공인 진보당 의원이 책상을 뛰어넘으면서 나에게 달려들었으나 보안요원에게 저지되었다. 그의 입에서는 그네꼬 개갈보 XX맛이 그리도 좋더냐 등의 다양한 발언이 튀어나왔고 그의 면상은 인간에서 귀신으로 페이스리프트 모델 출시가 임박한 지경이었으므로, 국회의장은 급히 청문회의 종료를 선언했다.
그런 그를 향해 나는 왼쪽 눈썹을 한번 올렸다 내리면서 입가에 미소를 지어주자, 피꺼솟 의원의 몸속에서 결정적인 뭔가가 끊어졌는지 그는 머리를 부여잡고 눈이 뒤집히면서 쓰러졌다. 허허허 저놈 허허허
경찰들에게 붙들린 채로 의원들끼리의 팀배틀이 벌어지기 시작한 청문회장을 나오면서 생각한 바, 19세기 후반 양복을 입은 것도 그렇거니와 말도 희한하게 하는 것을 남들이 객관적으로 본다면 장난치는 거 아닌가 생각하기 딱 좋다. 그러나 나는 이미 흑호방주 잡으러 가면서 죽었다고 생각한 몸이었고 이렇게 된 이상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다 할 생각이었다. 남들이 어찌 보건간에 최후까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내 식대로 못하면 죽어서도 평생 후회할 것임에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철저하게 내 할말을 다 하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정권은 이번 사태의 책임을 면피하기 위해서 나를 희생양으로 삼을 것이니 살아남을 방도가 없다. 내가 직간접적으로 죽인 사람만 천명이 훌쩍 넘어가는데 뭔 수로 풀려나겠어. 오직 사담 후세인 재판을 롤모델로 삼아 꼿꼿하게 나가는 것이 내 유일한 목적일 뿐이다.
그리고, 당연히 안산 사변 청문회는 오늘로 끝이 아니다.
그나저나 내일 구치소 아침에는 계란이 나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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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습대 89화 인실좇(2)
언젠가 씁니다.
tag : 팬픽, 다크판타지, 전습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