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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아부 사이프의 전투의 예술(Kunst des Fech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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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습대 92화 구원의 김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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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지나서 나타난 면회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김추자였다.

"이거 의외로군. 요시노부 공이 보내서 온거요?"

김추자는 구치소 옷을 입은 내 모습이 익숙하지 않은지 잠시 낯선 사람 보듯이 쳐다보았다.

"아니에요. 내가... 오고 싶어서 왔어요."

김추자는 뭔가 말하고 싶은 게 있는지 한참을 쭈뼛거리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참고로 김추자와의 대화는 전원 일본어다.

"그 아이는 많이 걱정하고 있어요."

김 아무개 이야기인 모양이다.

"그 아이는 이제 남편 품에서 잘 살면 그만이지. 친부도 아닌 그저 잠깐 보호자였던 내가 이제 그 애가 뭘 하던 관여할 거리가 없소."

물론 내 마음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 아이가 잘 있는지 보고 결혼을 한다면 이제는 축하해 주고 싶고, 딸이 생긴다면 얼마나 이쁠 지 보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친부도 아니고 그저 애매한 보호자 역할을 단지 몇년동안만 지속했을 뿐, 그럴 자격도 없다. 이제와서 걱정을 받을 이유도 없고. 그런 생각을 할수록 나 자신에 대한 자괴감은 나날이 커져만 갔다.

"왜 그런 식으로 말해요?"
"됐어요! 이제 그만 합시다. 그래서 온 본론이 뭐요?"

그녀는 한참을 망설이더니 핸드백에서 뭔가를 꺼내려 들었다. 그러나 다시 집어넣고서는 여전히 손을 핸드백 안에 넣은 채로 고개를 숙이고서는 잘 들리지도 않을 정도의 음량으로 뭐라뭐라 중얼거렸다.

"뭐라고?"

그제서야 음량이 조금 커져서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문영화씨에 대한 이야기를 알게 됐어요. 그런데.. 그.. 예쁘진 않던데...."

이년이 지금 뭔 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그 이야긴 또 어디서 들은 거요? 걔 이야기는 왜 하는 거요?"

그제서야 김추자는 핸드백에서 뭔가를 꺼내 내 앞에 놓았다. 놓인 것은 좀 못생기긴 했는데 약간의 귀요미 상이 있는 여자 사진이었다. 다만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중하급 외모랄까, 문영화 이름이 나와서 그런데 문영화보단 조금 후달리는 정도였다.

"이, 이 여자 어떻게 생각해요?"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느낀 대로 평가했다. 예쁘진 않지만 귀염상은 좀 있다 정도라고. 그러자 김추자의 면상이 약간 환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입꼬리가 약간 올라가면서도 수줍게 안절부절못하는 건 과년한 처녀라기보다는 약간 애 같은 느낌이 든다.

"왜, 친구요?"

김추자는 심호흡을 몇번 하면서 한참을 다시 망설이더니 다시 작아진 목소리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나, 난 어려서부터 못생겼다고 놀림도 받고... 이지메도 당했던 적도 있었고... 누군가를 좋아해 본 적도 있었지만 퇴짜만 맞고... 그래서 늘 자신이 없었고 늘 내 자신으로 기어들어가기만 했고... 아무도 내 얼굴을 보고 예쁘다거나 귀엽다고 말해준 적은 한번도 없었고... 그래서..."

숙인 고개 밑으로 눈물 같은 것이 한두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성형 수술을 했어요. 엄마가 도와주었죠. 예뻐지니까 많은 것이 달라졌어요. 남자들이 떠받들어주고 여자들도 함부로 못 대했죠. 하지만 딱 한가지.. 언제부턴가 무서워지기 시작한 거에요. 누가 내 추한 진짜 모습을 알아버릴까봐.. 한번은 결혼까지 생각했던 남자가 있었어요. 옛날 사진을 보여주자 저더러 사기꾼이라더군요... 그렇게 헤어졌고 난 힘들었어요... 그때부터 더 사귀지 못하고 단지 누군가를 짝사랑해도 감히 마음조차 열지 못했어요. 단지 클럽에서의 하루살이 사랑이 전부일 뿐..."

숙인 고개 밑으로 떨어지는 게 눈물이란 건 이제 아무도 부정 못할 만큼 많아지고 있었다.

"그.. 그런데 당신은 조금 이상하더군요. 그냥 이상했어요. 그래서 관심을 가지다가 당신까지 조금씩 좋아지게 되었어요. 그리고 또 무서웠죠. 당신도 내 과거를 알면 못생겼다고 말하고 그럴까봐... 그래서 한 걸음을 더 못 가고 있었던 건데... 여원홍 아저씨가 문영화씨에 대해 말해준 거였어요.. 그래서 자신감이 생겨서, 한번 와 본 거에요.. 봉행씨가 좋아하는 여자가 그정도라면 나한테도 기회는 있을 것 같아서.."

한숨이 나왔다. 그녀의 입장은 잘 알았다. 외모 탓에 위축된 삶을 보내다가 성형으로 인생 편 것까진 좋았는데, 지금의 자신이 가짜이고 과거가 진짜라는 생각에 둘러싸여 도로 자신감을 잃게 된 것이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던 여자가 별로 예쁘지 않으니까 과거의 진짜 자신이라도 대쉬해볼 수 있을 것 같아 용기를 내서 오게 된 거라는 말이다. 하지만 왜 하필 구치소에서 선고만 기다리고 있는 나에게 이제 와서 그런단 말인가?

"김추자씨..."

"기, 깅츄자라고 부르지 말아줘요... 아키코라고 불러주세요..."

그녀가 원하는 건 명백했다. 일본에서 이름을 부르는 건 가족이나 친구 아니면 연인 사이에서나 하는 호칭이다.

"고개를 들라."

갑자기 고풍스러운 사극 말투가 나오자 김추자씨는 약간 놀란 투로 고개를 슥 들었다. 눈화장이 눈물 탓에 차마 보일 수 없는 상태가 되어있었다. 그 꼴을 보니 참담한 근래의 나날이었지만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흐흐흐...."

그녀는 자신의 모습이 참담하다는 걸 눈치챘는지 급히 옷소매로 눈물을 훔쳤지만, 난리가 난 화장을 어떻게 할 도리는 없다. 허둥지둥하는 그녀를 보면서 나는 마음 속에 비추어지는 빛줄기를 느끼는 듯한 마음으로 조용히 말했다.

"아키코... 눈 화장이 난리도 아니군..."

의외의 호칭으로 불리운 김추자, 아니 가네야마 아키코는 얼굴을 정돈하는 것도 잊은 채로 멍해 있었다. 그런 그녀의 얼굴을 보며 나는 미소를 띠고 조용히 말해주었다.

"이제 평생 동안 매일 고쳐 주리다!"

그녀는 그렇게 한참 동안을 울고 있었다. 그녀를 보면서 김 아무개나 문영화가 떠올랐고, 가슴이 아려왔다.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져 줄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한참 후 그녀는 구원받은 듯한 표정으로 홀가분하게 면회실을 나갔다. 하지만 앞으로 현실이 문제였다.

2주 후 선고공판에서 나는 징역 12년을 선고받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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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습대 92화 하지않겠는가
언젠가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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