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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아부 사이프의 전투의 예술(Kunst des Fech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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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습대 94화 정치 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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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등법원의 정문을 나서자 대규모의 기자들이 군집해 있었다. 터지는 카메라 플래쉬가 낮에도 시력에 영향을 줄 정도다.

이번 재판의 판결과 그에 얽힌 이야기는 기자들의 최고의 소재거리가 될 수 있음에 틀림없었다. 원래 전 간부들이라는 도쿠가와 요시노부와 여원홍도 통수를 치고 비난을 거듭하는데다, 변변한 변호사도 구하지 못해 서면 작성조차 책보고 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았던 내가 갑자기 김&장을 비롯한 유수의 법무법인들이 모여서 구성한 드림팀의 중점변호를 받고 또 업계 전관예우의 아이콘들이 대거 참여하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그 덕으로 원래 온갖 과실치사의 혐의를 받고, 특히 전철연 사건을 의도된 학살로 판결했던 1심을 완전히 뒤집어엎고 징역 12년형을 징역 4년형으로 감면하는 놀라운 대 성과가 벌어지기까지 한 것이다.

최대 쟁점은 전철연 아비초열지옥 강림사태에 관한 것으로, 1심에서는 특히 전철연이 먼저 건물을 점거하고 불법적인 행위를 한 것은 인정되나 전철연이 화염병 등을 사용하는 것을 충분히 인지한 상태에서 휘발유를 뿌린 것을 나의 주장대로 돌입을 위한 배수진 행위로 보기 어려우며 특히 전철연이 정치적 음모를 가지고 진보진영과 결탁했다는 것은 입증되지도 않으며 쟁점과 상관도 없다. 배경만을 볼때 현실적으로 의도적으로 재난을 유도한 것임에 틀림없다는 것으로 중형을 선고받았지만,

2심에서는 흑호방주 자료를 더욱 핵심만 요약 정리해서 전철연은 처음부터 사태를 벌이기 위한 희생을 각오하고 있었다고 주장하며 특히 휘발유 분사를 인지하였음에도 화염병을 던진 것은 이러한 증거로 판단할 때 다분히 의도적이었고 그렇지 않더라도 전철연측의 일방적인 과실로밖에는 볼 수 없다는 것을 골자로 한 내용이 <나도 받아들여지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지만> 받아들여져서 4년형으로 크게 줄어든 것이다.

물론 검찰은 이를 박박 갈면서 항소... 하는게 맞겠지만 의외로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고, 진보당과 민주당에서 죽이네 살리네 하면서 추가적인 내용으로 고소를 진행할 것을 천명하면서 기자 회견을 하긴 했지만, 우덜 변호 드림팀의 말에 의하면 별거 아니라고 하는데 지금까지 상상조차 못한 전문성과 경험으로 굉장한 도움을 주어 온 그들의 말인 만큼 큰 신뢰가 되었다. 하지만 다른 모든 것보다, 진짜 가장 큰 도움을 준 것은 다름아닌 나 자신이라고 말한다.

"당신의 행동에 지지를 보내는 사람은 아주 많습니다. 저도 그 중 하나입니다."

이렇게 말한 젋은 변호사 한명이 더 말해준 바에 따르자면, 이번 판결에는 판사가 나에게 굉장한 호감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점이 아주 크게 작용했다고 했다. 나는 이런 일이 될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으나 결국 이번 안산 사변은 졸지에 진보 보수 진영의 대리전 양상으로 흘러갔고, 보수 진영의 아이콘처럼 되어버린 나에게 보수층의 지지가 이어져 결국 검경과 국회, 변호사 등의 대부분이 가진 진영논리가 나를 구했다... 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솔직히 말은 안해도 서로 쳐죽이고 싶은 마음은 부글부글 끓고 있었을테니, 비록 나는 생각도 안했지만 결과적으로 그걸 대신해준 나에게 호감을 가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번 재판은 명백하게 승리라고 판단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모여든 기자양반들에게 역시 무솔리니를 벤치마킹한 당당한 포즈로 화답했으며, 세달 전과 같이 기자양반들의 질문에 화답했다. 처음에는 형량에 대해 묻고 이번 판결에 대해 어찌 생각하느냐는 질문 다음에는 아마 기자양반들 최대의 궁금증임에 틀림없을 배후 문제가 튀어나왔다.

"조선일보 사회부 XXX기자양반은 아직도 건강하시군!"

"감사합니다. 그럼 질문 하겠습니다. 이번 판결에서 놀라운 점이, 지난 재판에서는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서 서면 작성도 스스로 하셨다고 들었는데요, 이번 재판에서는 갑자기 각계각층에서 후원이 들어오고 심지어 법무법인에서 드림팀까지 구성했습니다. 이 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의는 막을 길이 없습니다. 또 정의는 모두가 추구하고 함께하고 싶은 것이 바로 정의라는 것이죠. 정의가 무너질 때 사람은 집단지성을 구성하고 시대정신을 일으켜 이에 저항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원래 정의의 편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수많은 가치관들이 있고, 그들 모두 제각기 자기가 정의임을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 천만가지 정의 중 오직 하나만이 선택되고, 사람들의 도움과 협력을 받아 마침내 정의로써 금자탑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선택하는 권한은 오직 하나, 시대정신에 있습니다. 시대정신이 정의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에 제가 이렇게 비로소 산제물에서 벗어나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제가 시대정신의 선택을 받았다고밖에는 볼 수 없습니다. 시대정신이 억울한 파멸을 앞에 둔 의인을 마치 롯처럼 구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 재판에서 정치권의 도움이 있었다고도 이야기들 하는데요. 그러면 혹시 말씀드립니다만 정계 진출에 관련한 루머가 돌고 있는데 새누리당에서 정치인으로 영입하기 위해 도움을 주었다고 합니다. 사실입니까?"

나는 마이크를 고쳐잡고 안면에 미소를 띠면서 당당히 말했다.

"정치 안해요!"

순간 카메라 스파크가 집중적으로 동시다발적으로 터졌다.

"시대 정신에 동참하는 사람은 신분의 고하를 가리지 않습니다. 정의는 막을 길이 없기 때문이죠. 뭐 물론 당내에서 저를 좋게 보는 것도 그런 거라고 말씀드릴 수 있고요. 그런데 뭐 정치를 하고 말고는 아무래도 자기 선택 아니겠습니까? 사람이 누군가를 도와줄때 야 너 내가 밥사줬으니까 나중에 어, 내가 포인트 싾아놨어 니는 무조건 밥사주거나 돈빌려줘야돼. 이런 식으로 하는 게 아니죠? 인간에 대한 도움, 후원 이런거는 인간적인 것이고 그런 것이지 무슨 돈투자하고 회수하고 하는 통장 잔고가 아니란 말입니다. 이번에 저를 위해 들고 일어난 시대 정신, 그거에 동참한 사람들이... 뭐 이런 건 있겠습니다. 당신 정말 마음에 들었다. 뭐 우리 회사 고문으로 오시거나 뭐 정계에 입문을 해서 그 능력과 실력을 더 큰곳에 써주면 좋겠다. 이런 것이야 물론 누구나 말할 수 있는 것이지마는 그러나 야 니가 변호팀 후원하는데 내 덕을 봤으니까 저기 내 맘에 안드는 놈 한대 때찌해줘라. 이런 것은 아닌 것이죠.

만일 그런식으로 뭐 도움줬으니 포인트 싾아놨다 그러니 뭐 3포인트만큼 갚아라 이렇게 통장 예금 다루듯이 사람을 생각한다면, 또 그런 식으로 이번 일을 판단한다면 그건 인간 본래의 인간성에 대한 모욕이고 시대정신에 대한 모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본질적으로 자유로운 겁니다. 정치를 하느냐 아니면 이제 전습대 활동으로 보여준 경영 능력이나 조직 관리 능력을 가지고 어느 회사의 컨설턴트로 들어가든가 뭐 이런 거는 제가 선택해서 하는 겁니다. 정치를 하고 안하고 이런 문제는 본질적으로 내 문제니까 내가 안하는겁니다. 누가 저를 강제로 시키겠습니까?"

"그러면 정치는 아예 안하실겁니까?"

"뭐 지금은 생각이 없구요. 거 국회에서 청문회 좀 나가보니까 아주 신물이 나데요. 그래도 그러면서도 정치하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나라를 위해 힘들어도 내가 이자리에서 단단히 우주방어를 해야겠다. 뭐 그런 사명감이 있으니까 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은 되더구만요. 지금은 뭐 일단 형기를 마치고 나와서 뭐 할지는 저도 잘 모르겠고요. 어차피 안산은 헌병경찰이 장악했고 지금 군정체제에 들어갔으니까 뭐 전습대는 전혀 필요하지도 않은 거고! 하.. 뭐해야될지도 잘 모르것네, 암튼 지금 정치하는 건 마음 속에서 저기 한 10순위 한 그쯤이라고 보시면 될 겁니다!"

한참 말하던 와중 누군가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김추자였다. 기자들 대열 바깥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그녀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얼굴이 환해졌지만, 금방 내 시선이 다시 기자들을 향하자 도로 어두워졌다. 문득 구치소에서 받았던 허무도의 편지가 생각났다.

<그간의 일은 들었습니다. 참으로 잘된 일입니다. 그러나 대중정치인임을 잊지 마십시오. 대중정치인은 스타에 더 가깝습니다. 김추자의 일도 들었습니다만 대중적으로 티는 내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기혼보다는 미혼이 여성유권자의 표를 더 얻을 수 있습니다.>

조↗까↘

"그런데 저기 저 뒤의 아가씨는 누구요?"

졸지에 기자들의 시선이 김추자에게 쏠렸다. 갑자기 대규모의 시선과 관심을 집중받은 김추자는 당혹스러움도 당혹스러움이지만 무슨 처음 본 쌩판 남 취급하는 내 발언에 속이 상했는지 얼굴이 벌개져서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여자가 울기 시작하자 기자들 은 당황하기 시작했고 김추자는 곧 돌아서 도망가려는 듯한 모양새를 취했다.

"추자야! 니 서방 놔두고 어디를 가니?"

멈춰선 김추자가 등을 보인 채로 가만히 있는 사이 나는 계단을 성큼성큼 내려가기 시작했다. 기자들이 일제히 옆으로 물러서는 가운데 나는 대리석이 깔린 바닥을 지나 그녀의 어깨를 잡고 당겼다. 돌아선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벌개져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지만 눈빛은 아까와는 달랐다. 내 가슴을 주먹으로 퍽퍽 때리며 안겼다. 인간적으로 존나 아팠다. 와이셔츠에 전해지는 뜨거움을 느끼며 그녀의 머리칼을 쓰다듬는 와중 카메라플래쉬에 이은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부인이십니까?"
"미혼 아니었습니까?"

"여편네가 일본여자라 장난을 모르네요. 아까도 서방을 막 패쌌고... 이벤트 한번 잘못했다간 입원 하겠네요. 허허... 아 그리고 아직까진 미혼입니다. 이제 몇분만 있으면 유부남 되니까 거 기자양반들 잘들 보십쇼!"

김추자의 어깨를 잡고 몸에서 약간 떼었다. 김추자의 머리카락 상태는 조금 흐트러졌고 화장 상태도 당연히 눈물 탓에 좋지 않았다.

"나니 잇떼루노까 젠젠 와깐나이요.. 와따시 간코쿠고 신나이까라..."
"쟈, 난데 삿끼니와 도맛떼룬다."

"와따시나리 벤꾜시떼루까라... 쇼반떼 꼬또바와 싯떼룬데..."
"츠카와라나이 고또바 밧까리 키오쿠시옷떼..."

허문도는 정치선전적인 입장에서 했을 조언이었겠지만, 나는 항상 머뭇거리고 거리를 두다가 문영화를 잃었었다. 사람으로 태어나 살아가면서 어떠한 계산이나 고려를 떠나 일직선으로 마음을 부딪히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 있다고 생각을 한다. 지금이 그 순간이라고 생각을 한다. 순간 과거 영화에서 보았던 대사가 생각이 났다. 그 대사는 마치 지금의 나에게 어울리는 것으로밖에는 생각되지 않았다.

"나는 한때 사랑을 하였으나 지키지 못했고... 잃은 후에 큰 후회를 했습니다."

기자들은 녹음기를 들이대고 한 순간도 놓치지 않을 기세로 집중하고 있었다.

"인간사에서 가장 고통스런 일이 후회하는 것입니다..."

가슴이 북받쳐오르고 전신이 슬픔으로 전율하는 것을 억지로 겨우 참아냈다. 문영화의 옛 모습과 근래에 봤던 얼굴, 굶어죽은 그녀의 딸의 모습과 흑호방주가 나에게 사죄하는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만일 다시 한번 하늘이 내게 기회를 준다면..."

그리고 김추자의 얼굴이 보였다. 내 얼굴을 보면서 무슨 말인지 알아들으려고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는 게 표정으로 다 드러나서, 가슴의 아픔도 잊고 조금 웃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나따니 코이시떼이루오 모시아게요..."(당신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겠소)

일본말로 하니 그녀의 눈이 커졌다가 눈물로 눈동자의 윤곽선이 흐물흐물해지기 시작했다.

"모시 키겐오 사다멘또 스루노나라... 이치만넨니 시마스루.."(만일 기한을 정해야 한다면 만년으로 하겠소)

그녀가 소리내어 통곡하며 내 가슴의 얼굴을 묻는 순간 카메라 플래쉬가 폭발하면서 기자양반들의 휘파람과 박수 소리가 이어졌다.

"위험하다!"

큰 소리와 함께 낡은 쌍용 이스타나 한대가 법원 정문을 돌파하면서 달려들었으나 바리케이트가 설치되어 있어 중간에서 멈춰섰다. 뒤이어 문이 열리면서 8명 정도의 복면을 한 젋은이들이 사시미칼과 일본도를 들고 이쪽을 향해 전력질주하기 시작했다. 기자들이 법원 안으로 도망치기 시작하는 가운데 나를 데려갈 예정이었던 호송경찰들이 급히 나서서 권총을 쏘기 시작했으나...

"저쪽이다!"

경찰들이 앞에서 달려드는 괴한들에 정신이 팔린 사이 양옆에서 서너명의 발빠른 괴한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긴 사시미를 든 이들을 피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순간 김추자가 나를 밀쳐내며 팔을 벌리고 괴한 앞을 막아섰다.

"안돼!"

순간 외마디 비명 소리가 들렸다. 순간 나의 눈에 떠오른 것은 1960년 일본 극우파 청년이 사회당 정치인을 습격하여 찔러죽인 사건이었다. 이제는 나를 좌익 청년들이 찔러죽이려고 한다니 수십년만에 이 왠 아이러니란 말인가. 그러나 차라리 내가 죽어야 하는데 김추자에게 무슨 죄가 있다는 말인가!

그러나 날카로운 금속소리가 대리석 바닥에서 울렸다. 뒤이어 쓰러진 것은 복면을 한 청년이었다. 나를 향해 달려오던 다른 쪽의 청년 둘도 바닥에 널부러져 있었다. 그리고 김추자는 멀쩡하게 서 있었다. 누가 이 암살자들을 처단했단 말인가? 그 해답은 여전히 반항하려는 마지막 청년 암살자의 코에 꽃히는 종권(주먹을 세워서 치는 것)으로 확실해졌다.

"김무정 동지!"

뒤로 쓰러지는 청년 암살자의 실루엣이 사라지면서 보인 것은 남권 특유의 자세를 취한 전습대 간부, 김무정이었다. 그리고 반대편에는 김석원이 있었다. 사시미를 발로 멀리 차버리면서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씨익 웃는 둘은 그러나 도피 생활 중이었을 것이다.

"이게 어찌된 거요, 하필 이런 곳에 나타나다니!"
"봉행님의 승리를 먼 발치에서 보고 돌아가려 했지만, 왠 놈들이 초를 치니 달리 도리가 없었습니다."
"동지들만 있으면 아무리 많은 적도 무서울 것이 없습니다!"

그들의 손을 잡고 하는 나의 말은 완전한 진심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오늘 나는 여기서 대한민국 정치사의 한줄을 장식하는 죽음만을 남기고 사라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더러운 개새끼, 우리 청년 반민특위가 반드시 널 죽이겠다!!"

피가 흐르는 허벅지를 움켜쥐며 바닥에 나뒹군 청년이 복면에 벗겨진 채로 소리소리 질러대는 것을 배경으로, 빠져나온 기자들의 카메라 소리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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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습대 최종화 누가 니 장인이냐, 터미네이트!!
언젠가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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