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비봉에서 상경한 김종훈이 영동에 위치한 성인섬유 9작업반에서 일한 지도 3년째. 물가는 나날이 올라가지만 월급은 올라가지 않고, 사람들의 삶은 팍팍하지만 당장 그만두면 먹고 살 길이 없어 14시간 작업도 감지덕지해야 하고 10시간 작업에 행복해하는 그냥 그렇게 사는 세상이었다.
남편이 일찍 죽어 두 아이를 키우는 배씨 아줌마, 도민이 형과 승훈이 형을 비롯한 9 작업반은 언제나 가족같다. 함께 슬퍼하고 함께 분노하며 함께 기뻐하는 그들의 삶은 비록 박봉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릴지라도 그래도 그렇게 살아가게 해주는 힘이 되주었다. 퇴근하며 좀 떨어진 기숙사로 향하는 9작업반 사람들은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자신들의 꿈을 말하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주정뱅이 심 할배는 술만 먹으면 개가 되지만 평시에는 다정다감하고 일을 잘 한다. 자재창고로 자재를 반출하러 갔을 때 무너진 자재에 심 할배의 다리가 부러지고, 병원비가 엄청나게 나왔지만 공장장은 화만 버럭 내며 심 할배 때문에 우리 회사가 피해를 본다는 식으로 몰아간다. 결국 9작업반 사람들은 사장에게 떼로 몰려가 호소하지만 사장은 감히 버러지들 따위가 고귀한 자신에게 하극상을 했다는 사실에 분노하여 9작업반의 월급을 3달동안 주지 않겠다고 선포한다.
직원들을 먹여 살리는 자신은 부모인데, 자식이 잘못을 했으니 당연히 혼을 내야 한다는 말도 안되는 논리를 내세우는 사장에게 9작업반은 눈물로 호소를 한다. 월급은 너무나도 적었으며 가족을 부양하지도 못할 수준. 가구나 전자제품은 상상도 못하고 저축조차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월급이 한달이라도 밀리면 당장 식량이 없다는 현실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비는 9 작업반 사람들, 한때 복싱을 하여 철부지 시절에는 자기 옷깃만 잡아도 주먹질로 대답했다는 승훈이 형조차 머리를 찧으며 눈물로 잘못했다고 외치지만 사장은 "저새끼들 짤라버리고 딴놈 써라" 라는 말만 한다.
분노한 9작업반 사람들은 작업장을 점거하고 시위를 결행한다. 파업을 하는 것이다. 사장은 빨갱이 새끼들이라며 길길이 날뛰고 공장장을 선두로 하는 간부들은 다른 작업반 사람들을 선동하여 저새끼들 때문에 우리 회사가 망하게 생겼다고 주장하며 직원들끼리의 분열을 조장한다. 기숙사 군기반장을 비롯 직원들의 증오의 눈빛과 음모에도 버텨나가는 9 작업반.
그러나 사장은 일본에다 퍼부은 주식놀이와 땅놀이가 재일조선인 사기꾼에게 싸그리 날아가고, 야쿠자 자금을 끌어다 쓴 탓에 채권추심 절차가 벌어지자 직원들의 월급과 자재 구입비용을 비롯한 자본금을 싸그리 뽑고, 공장과 자재를 담보로 대출까지 받아서 싸그리 돈을 횡령하고는 미국으로 날아버린다.
망연자실한 간부들과 직원들은 절망하지만, 9작업반의 파업으로 자신들이 이렇게 되었다는 생각에 오히려 9작업반을 더욱 증오한다. 뒤이어 채권단이 공장을 인수하면서 새로운 사장이 취임했고, 직원들은 새로운 사장에게 밀린 월급을 요청하지만 자기도 손해를 본 사람이고 월급은 도망간 사장에게나 찾으라는 단언에 모든 직원들은 대대적인 파업에 돌입한다.
이에 채권단은 대체노동자를 투입하여 공장을 돌리려고 시도하나 월급을 받지 못한 직원들은 그들을 가로막고, 오히려 공장장을 선두로 자재를 팔아 노동자들의 생계를 유지해볼 생각을 한다. 밀반출 거래처가 물색되고 있다는 말을 들은 채권단은 용역깡패들과 경찰들을 불러 파업을 분쇄하기 위한 몇차례의 진입작전을 펼치지만 복싱의 귀재 승훈이형을 선두로 한 9작업반의 활약 앞에 번번히 좌절되고, 성인섬유 스트라이크 사태는 곧 일간지에서도 오르내릴 만큼 커다란 이슈가 된다.
한편 미국이 개입해서 박정희 독재를 철폐해야 한다고 인터뷰한 신민당 김영삼 총재를 향해 나라를 팔아먹는다는 비난 여론이 빗발친다. 김영삼은 국면을 전환할 한가지 방법으로 탄압받는 노동자들을 내세워 여론몰이를 할 구상을 짠다. 그러던 와중 성인섬유 스트라이크 사태에 주목한 그는 9작업반의 사람들을 만나보게 되고 9작업반은 신민당 총재인 김영삼이 도움을 약속하자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마침내 점거한 공장으로 전투경찰이 들이닥치자 몽둥이 찜질을 당하면서도 신민당 당사로 도주한 9작업반 사람들은 그러나 뉴스에서 파업현장에서 김일성 찬양 문건과 북괴 지령 문서들이 발굴되었으며 김영삼이 조선노동당의 간첩이라는 증거가 발견되었다는 내용에 절망한다. 마침내 서울 전역에 계엄령이 선포되고 수방사의 무장병력이 속속 신민당 당사를 포위하는 가운데 이철승을 비롯한 정치인은 협상을 하러 간다고 하였으나 문을 나서는 순간 조준사격에 머리통이 뚫리고, 김영삼은 미국 대사관에 연락을 시도하였으나 전화선은 끊어져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전해진 쪽지에는 미국 정부는 박정희 정부를 지지하기로 선언했다는 내용 뿐이었다.
배신당한 김영삼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분신 자살을 시도했으며 옥상에서 불타는 김영삼을 촬영하는 TV카메라는 긴급 속보로 김영삼이 김일성동지 만세를 외치며 죽었다는 거짓 보도를 전했다. 분노한 9 작업반의 사람들과 신민당 직원들은 피눈물을 쏟으며 계엄군에게 돌진하고 마침내 철문을 부수며 진입한 피아트 장갑차에 깔린 배씨 아줌마의 얼굴 가죽이 타이어에 들러붙어 바닥을 몇번이고 쓸어버리는 것을 시작으로 기관포와 승공포의 연사 앞에 도민이 형과 승훈이 형의 팔다리가 터져나갔으며 주인공 김종훈은 개머리판에 두들겨 맞고 옆구리를 총검으로 찔린 채로 생포된다.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투하된 네이팜탄이 신민당 당사를 완전히 전소시키는 광경을 뒤로 하고 김종훈의 얼굴은 눈물과 콧물, 핏물로 더럽혀져 있었으나 분노와 슬픔으로 점철된 눈동자는 형형이 빛나는 채로, 군화발에 얼굴을 채이면서 돼지처럼 끌려간다.
주인공 김종훈은 남산 대공분실로 끌려가 무자비한 고문을 받았음에도 굴복하지 않았다. 그러나 부모님들에게 큰일이 날 거라는 협박과 이것만 인정하면 새 신분을 주어 편히 살게 해주겠다는 회유에 결국 자신이 북한의 지령을 받은 특수공작원이라는 문서에 서명을 한다. 곧 TV와 신문에서 자신의 얼굴이 대서특필되고 12년형을 선고받았다는 사실에 배신을 성토하면서 울부짖는 김종훈. 그러나 "병신새끼.. 형이 세상 사는 법을 알려주는 거야. 억울하면 세상이 변하고 나를 죽여보든지. ㄲㄲㄲㄲ" 라며 비웃는 중정 직원의 얼굴을 끝으로 그는 감옥 독방에서 12년을 보낸다.
세상이 변하고 민주화가 되었지만 사회로 나온 김종훈을 맞는 것은 빨갱이 간첩이라는 냉대 뿐. 고향의 부모님은 자살하였고 한때 반갑게 맞이해주던 시골 아줌마들은 경계와 의심의 눈초리로 대문을 닫아버렸으며, 노가다 판에서조차 받아주지 않는다. 한때 9작업반의 가족들과 미래에 대한 작은 희망을 떠올리며 바라보았던 서울의 밤하늘은 이제 탁한 공기로 별조차 보이지 않는다. 다세대 주택들 사이의 좁은 골목에서 신문지를 덮으며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김종훈의 수염은 지저분하게 자랐으며 옷에는 지린내와 때가 점점 짙어갔다.
순간 김종훈의 곁에는 9작업반의 가족들이 함께 있었고, 때는 다시 70년대로 돌아가 지저분하지만 익숙하고 정감가는 서울의 골목길을 지나면서 함께 퇴근하고 있었다. 밤하늘의 별은 맑게 보였으며 은하수를 본다. 배씨 아줌마는 다음달이면 34평짜리 집을 사서 이사갈 것이며, 도민이 형은 피아트 승용차를 살 수 있다며 흥분한다. 밤 하늘의 저 별들처럼 언젠가 우리도 빛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히 여겨져, 고향에 금의환향할 생각을 하며 김종훈은 언젠가는 반드시 대궐같은 집을 사서 부모님을 모시겠다는 꿈을 다짐한다.
눈을 떴을 때 그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은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는 것을 탁한 서울의 하늘이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종훈은 강남의 어느 큰 빌딩 앞에 서 있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마다 지린내에 얼굴을 찌푸렸다. 화단에서 돌을 뽑아 유리 회전문을 향해 던졌다. 회전문이 깨지고 곧 경찰이 출동하여 김종훈의 웃옷 자락을 붙들고 경찰차로 끌고 갔다. 김종훈은 차에 끌려 타는 순간까지 빌딩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빌딩은 과거 성인섬유 공장이 있던 자리였다. 9작업반의 기억과 피눈물이 서린 그곳에서 그는 돌을 던지는 것으로 그동안의 원한에 대한 자기만의 복수를 마무리한 것이다.
그후 김종훈을 본 사람은 없었다.
다만 대학병원에는 오늘도 무연고 카데바가 꾸준하다.
------------------------------------------------------
옛날 러시아영화 9중대를 보고 구상했던 스토리입니다. 위의 내용은 적당한 줄거리 요약으로 원래 주인공 김승훈은 초반부에는 1인칭 시점으로 당시의 열악하고 비참한 노동 환경과, 스스로를 위안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9작업반 가족들의 인간미를 조명하고, 불의의 사고에 의해 돈이 필요한 사정이 생기면서 비참하게 침몰해가는 인간 군상들의 몰락을 전달하는 역할입니다. 초반부의 여러 인간 군상들의 몰락들을 보여주는 자잘한 사건들이 구상되어 있었지만 다이제스트에는 넣지 않았습니다.
주제는 <선량한 시궁창 쥐들>로, 아무리 착하고 열심히 살아도 결국 시궁창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한낱 쥐들의 인생을 소재로 삼았습니다. 결국 시궁쥐는 시궁쥐일 뿐으로 그것들에게 인생의 역전이나 보답받는 인생은 없습니다. 전달자인 김종훈도 시궁쥐라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은 민주화되고 바뀌었지만 김종훈은 시궁쥐로써의 삶을 살아가며, 그런 삶에 대한 모든 인연을 돌 한방이라는 지극히 소시민적인 행동 하나로 풀어버리는 것으로 자신의 삶을 싸게 팔아버린 그는 결국 푼돈에 팔아버린 자신의 삶의 댓가로 쥐어진 낡은 지폐조각에 해당하는 구원에 만족하며 고통스러운 삶에 대한 끈을 놓게 됩니다. 값진 젋음을 싸구려 월급에 팔고 커다른 원한을 싸구려 복수로 풀었으며 싸구려 구원을 택한 그의 최후는 공짜 카데바였습니다.
tag : 팬픽, 다크비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