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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아부 사이프의 전투의 예술(Kunst des Fech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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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무용론(?)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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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듣는 소리중에 이런 게 있다.

<진검의 칼날이 번뜩이는 상황에 자세를 어떻게 잡고 그럴 수 있다는 말이냐?>

<진검결투에선 막거나 그런 건 도저히 할 수도 없는 거고 먼저 빨리 쳐서 이기는게 최고다.>


문제는 이게 나름 <나 검술해요> 하는 사람들에게서 들려오는 소리라는 거다. 나는 이런 말을 들으면서 이 사람들이 과연 검술이란걸 제대로 배우기는 한건지 큰 의심을 품지 않을 수 없었는데 왜냐하면 이런 시각은 <자세란 인위적으로 취하는 예술적인 폼 같은 거> 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서는 나올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세라는 건 핵심만 짚자면 공격의 시작, 중간, 끝의 한 과정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는 당신이 검을 가지고 원칙에 맞게 싸우고 있다면 싫어도 나오고 있는게 바로 자세이다. 원칙이라고 해서 어려운게 아니고 상대를 잘 제압하고 승리하기 위해 움직인다면 그게 곧 원칙에 맞는 싸움이다. 이 영상을 보자.



영상의 내용은 별거 없고 그냥 몽둥이를 돌려서 쳐내고 반격 때리기로 끝내는 영상이다. 21초부터 시작하는 영상을 예로 들면 그냥 단순한 기술 한가지 보여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미 23~25초의 3초 동안 이들은 이미 4개의 자세를 취했다. 이게 뭔 소리냐면..

이건 억지에 불과하며 동작 중간에 단지 비슷한 순간적인 캡쳐를 해서는 비슷한 자세명을 붙였다고 생각할 사람이 매우 많으리라 본다. 그런데 르네상스 무술에선 자세란 저런 것이다. 처음에도 썼지만 자세란 공격의 시작-중간-끝이며, 각 자세마다 해줄 수 있는 것과 그 역할이 부가적으로 존재한다. 그것을 알고 수행하는 데 있어서 공격의 와중 가장 합리적인 시점을 포착하여 그것을 이른바 <자세:Guard>로 규정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이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치자. 상대를 강하게 공격하고 내려치려면 좋든 싫든 Vom tag 자세를 취하지 않을 수 없다. 내려치기가 끝났다면 싫어도 Alber로 끝날 수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 공격과 방어, 견제의 수많은 동작 중 하나의 시점을 포착하여 중요한 것으로 규정한다. 내가 알기론 다른 나라도 큰 차이가 없는 걸로 안다. 일본만 하더라도 중단은 찌르기를 위한 예비 자세이면서 상대를 견제하는 역할을 하고, 몸의 중심점에 있으므로 어느 방향에 오는 공격으로도 가장 빠르게 방어가 가능하다. 또 상단은 머리베기, 팔상은 대각선 베기를 위한 예비 자세이며 상단에서 베면 중단 또는 하단에서 끝나고, 얼굴을 견제하고 찌르기 위한 예비 자세는 상단 카스미, 몸을 견제하고 찌르기 위한 예비 자세는 하단 카스미로 구분하는 식이다. 

그렇다면 싸움을 한다면 자세를 거쳐가지 않을 수 없음에도, 왜 자세란 <인위적이고 부자연스러운 것> 으로 인식되는가?

먼저 제대로 된 검술을 배워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검술은 자세란 것의 본질에 대해서 정확히 해설하며 그것은 위에서 말하는 바와 다르지 않다.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것이므로 싫어도 기억할 수밖에 없는데 한국에서 검술이란 대체적으로 겉모양만 대충 베껴다 모양새만 그럴듯하게 만든 것들이 매우 많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소수의 검술은 제대로 된 것이 있으나, 최소한 국내에서 나름 알려진 것들은 대부분 이모양이다. 

이리저리 돌고 여기저기를 찌르고 베면서 다양한 모양새를 취하는 것은 검술의 전부가 아니라 그냥 훈련법의 일부일 뿐이다. 우리는 플러리쉬라고 부르고, 정확히는 섀도우복싱 같은 것이다. 가상의 상대를 상정하여 교전하면서 움직임으로써 몸상태를 향상시키고 무술적인 콤비네이션이 잊혀지지 않고, 빠른 상황판단과 순발력을 유지하는 목적이다. 그런데 검술의 본질을 모르니 이것을 대충 보고는 검술이란 저거라고 생각하고는 대충 이런저런 동작으로 열심히 베끼고 창작하여 춤이나 춘다. 이런 사람들이 자세가 뭔지 알 리가 없다. 

그렇지 않고 나름 이런저런 자세들을 구상하거나 베껴온 경우도 있지만, 말 그대로 겉모습에 불과하며 자세가 뭔지에 대해서는 교육받은 바 없기 때문에 이들도 매우 어색하기 짝이 없다. 이렇게 본질을 모르기 때문에 베껴다 쓰는 식인데 여기에 재패니즈 센세이들의 시연이 악화를 크게 가속화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재패니즈 센세이들의 시연은 매우 정적이고 조용하면서 예술적인 폼을 추구한다. 쥐죽은 듯이 조용한 가운데 검을 높이 들어올리고 심호흡을 하며 마치 보이지 않는 장벽이 가로막힌 듯 서로의 태세를 점검하고 기싸움을 한다. 투기가 부딪치는 순간 이미 상대의 빈틈은 간파했다. 내려쳐지는 검은 정확하게 몸 앞에서 멈추며 시연자는 엄숙하고 평정심을 유지한 채로 중후하게 제자리로 돌아간다. 

이걸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건 어디까지나 시연. 보여주기에 다름 아닌 것이고, 실제 검술 전투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이다. 일본의 위정자들이 좋아하고 고상한 것으로 취급하던 유-불-선의 가치관에 맞춰서 보여주는 바로 그런 것이다. 고류의 장본인들은 그걸 잘 알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 하지만 한국의 따라쟁이들은... 

그렇기 때문에 <자세? 인위적이고 부자연스럽게 점잔빼는 그런거잖아?> 라고 인식하게 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그러니 당연하다. 싸움은 격렬하고 순간순간이 변화하는 폭풍의 한가운데인데, 무슨 수로 에잇! 오오~ 하면서 점잔을 빼고 유불선의 경지와 심신합일을 이루겠는가? 당연히 안되지! 그러니 자세라는 것에 대해 회의감을 가지고 부정하지 않을 수가 없잖아? 

하지만 그건 자세라는 것의 본질이 아니다. 본질은 일본에서도 그렇고 우리 서양에서도 그렇듯이 지금까지 설명한 대로 싸움의 한 순간순간 중 중요한 부분을 캣치하고 규정한 것이다. 따라쟁이들이 그걸 모르고 대충 따라하다 보니 결국 사람들의 눈을 흐리게 만들어버렸지만 지금이라도 그러한 안개를 흩어버리고 본질을 보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야만 당신이 검술을 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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