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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아부 사이프의 전투의 예술(Kunst des Fech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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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모자를 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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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 요한 아돌프 루트비히 베르너(Johann Adolf Ludwig Werner)의 <군사 체육>(Militär-Gymnastik, 1850)를 보면 훈련 도구로 챙이 있는 모자가 있으며 마스크를 쓰지 않고 짐나스틱 세이버로 검술 훈련을 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내가 모자를 쓰고 ARMA에 나가게 한 원동력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처음 노마스크 스파링을 하고 무한한 가능성을 느꼈지만 반대로 부상에 대해서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일단 파트너의 턱뼈에 명중한 즈버크하우는 느낌상 매우 약하게 들어갔음에도 붓기를 유발했었고 무엇보다 얼굴의 다른 부분은 그렇게까지 심각한 결과를 유발한다고 할 수 없었지만 다른 무엇도 아닌 눈은 별개의 문제였다.

눈은 살이라면 돌아서면 잊어버릴 수준의 타격에도 심각한 손상을 유발하는데 아무리 리히테나워류가 가까운 싸움을 중심으로 삼는다고 한들 싸움에서 간격이란 유동적으로 변하는 것이며 또 긴 싸움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눈을 치거나 얼굴을 그어내리는 상황이 없으라는 법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리히테나워류 5가지 핵심 공격인 쉴러는 짧은 칼날(칼등)을 이용해 내리치는 짧은 베기에 속하는 것으로 본질적으로 베기일 뿐만 아니라 찌르기가 되기도 하는데 칼을 짧게 쓰기 때문에 중간쯤 간격을 두어도 칼끝이 눈앞에 들이대어진다. 그래서 기술 이름이 쉴러(사팔뜨기)인 것인데 눈앞에 온 칼끝을 사팔뜨기로 보게 된다는 데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만큼 문제가 있는데 쉴러가 늘 그렇듯이 상대가 보지 못하는 상단에서 내려오기 때문에 필링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내 공격이 막힌 줄 알고 무작정 돌진하다가 사단을 내기도 쉬운 것이다. 

그래서 얼굴을 그어내리지도 않고 쉴러가 눈에 들어가기 전에 막아줄 것이 필요했는데 이것이 바로 모자였다. 사실 이런 효능은 옛날부터 알아왔는데 케틀햇 같은 모자형 투구의 효능이 바로 이런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투구를 구입하는 것은 언어도단이고 마침 베르너의 군사 체육을 통해 실용성의 확신을 가질 수 있었고 그래서 찐따 모자였던 케피를 투입할 수 있었다.

케피인 이유는 일단 그게 근대 모자이기도 했기에 나의 아이덴디티를 확고히 내세울 물건이었기도 했지만 넓은 챙으로 방어력이 좋고 턱끈이 있어 쉽게 이탈하지 않는 점도 이유였다. 다만 동양인 두상과는 맞지 않는 디자인이고 또 서양인이라도 풍성한 장발머리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기 때문에 아무런 쓸모도 없이 방치되고 있기에 운동용으로 굴려지더라도 하나 아까울 것이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하필 모자 특성상 정수리에 판이 들어있어서 상대가 실수로 강하게 치더라도 왠만큼 막아 주는 특징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최적의 장비가 된 것이다.

다만 모자가 쓸모있다는 것을 알자 제각기 뭔가 등장시키기 시작했는데 방한 비니나 란츠크네히트 모자였다. 이것들은 챙이 없기 때문에 사실상 찰과상 예방 말고는 본질적으로 쓰나마나였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케피나 포레이지 캡, 볼러 등을 내세울 수는 없었는데 본질적으로 근대 모자이며 이것을 내세우며 케피 일원화를 주장한다면 이는 르네상스 검술 단체라는 분위기를 흐릴 수 있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었기도 했지만 일단 근대 티를 내는 것 자체가 이단아적인 행동이었기에 실용을 내세워 기생하고는 있지만 이렇다 저렇다 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한 것이라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결론적으로 안전을 위해 모자를 쓴다면 그것이 스냅백이든 그 어떤 종류이든 상관없으나 챙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것도 보통 챙은 안되고 단단해야 한다. 보안경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천 모자를 쓰던 사람들은 나중에는 점점 모자를 안 쓰기 시작했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본질적으로 머리카락과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동네 야구모자는 적절한 장비가 된다. 하지만 베레모나 필박스 캡같은건 아무리 비싸더라도 의미가 없다. 노 마스크 스파링에서 모자의 의미는 비단 나만의 판단은 아니다. 과거에도 그 실용성은 인정받아 연습에서 활용되었다. 그러니 나는 모자를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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